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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신(土神)과 곡신(穀神)에 제사지내는 사직단(社稷壇)
 닉네임 : 김민수  2014-10-21 10:42:13   조회: 7290   
토신(土神)과 곡신(穀神)에 제사지내는 사직단(社稷壇)







http://blog.naver.com/msk7613







1395년 1월 29일 1393년 2월 15일 조선국(朝鮮國:1393-1897) 건국한 태조(太祖) 이단(李旦)이 토신(土神)과 곡신(穀神)에 제사지내는 사직단(社稷壇) 영조(營造)를 명하였다. 2월 24일 사직단(社稷壇)의 공사가 있었다. 2월 27일 서봉(西峯) 밑에 거둥하여 사직단(社稷壇) 쌓는 것을 보았다. 1404년 7월 18일 태종이 태묘·사직단(社稷壇)·산천단(山川壇)과 불우(佛宇)·신사(神祠)에 날이 개기를 빌었으니, 의정부의 청을 따른 것이다. 1405년 3월 1일 예조(禮曹)에서 6조(六曹)의 직무 분담(職務 分擔)과 소속(所屬)을 상정(詳定)하여 계문(啓聞)하기를 “사직단(社稷壇)은 예조(禮曹) 소속(所屬)입니다.”하였다.





1409년 7월 7일 예조(禮曹)에서 문선왕(文宣王)과 4배위(配位)·10철(十哲)의 위판(位板) 규식(規式)을 아뢰기를 “위판(位板)의 식(式)이 예전 명문(明文)이 없습니다. 홍무예제(洪武禮制)를 상고하면 사직단(社稷壇) 신패(神牌)의 몸 높이가 2척(尺) 2촌(寸)이고, 너비가 4촌(寸) 5푼(分)이며, 두께가 9푼, 좌고(座高) 4촌 5푼이고, 너비가 8촌 5푼, 두께가 4촌(寸) 5푼(分)이며, 제왕(帝王) 능묘(陵墓)의 제물(祭物) 기명(器皿)의 의주(儀註)가 모두 사직(社稷)과 같으니, 문선왕(文宣王)의 위판(位板)을 사직단 신(社稷壇神)의 위판 규식(位板 規式)에 의하여 제조하고, 4배위(配位)의 위판은 신고(身高) 2척, 너비 4촌 3푼, 두께 8푼으로, 10철(十哲)의 위판은 신고(身高) 1척 8촌, 너비 4촌 1푼, 두께 7푼으로 하되, 좌(座)의 높이·너비·두께는 모두 같게 하여, 이 차등(差等)에 의해 제조하소서.”하였다.





1414년 4월 17일 예조에서 사직(社稷)의 둘레 담장인 주장(周墻)의 제도를 바쳤다. 계문(啓聞)에 “둘레 담장인 주장(周墻)은 송조(宋朝) 의례국(儀禮局)의 5례 신의(五禮 新義)에 의하여 4문(門)이 동일한 유(壝)로서 25보(步)의 제도를 1유(壝)로 삼았고, 송국 고종(高宗) 소흥제(紹興帝) 13년인 1143년 양존중(楊存中) 등이 상언(上言)한 것에 의하면 둥근 장유(墻壝) 외에 40보(步)의 제도로서 남쪽·서쪽·북쪽은 산 등성 마루인 산강(山岡)으로 한계를 삼고, 동쪽 한계는 1백 40보(步)를 수축(修築)하여 대차(大次)의 의장(儀仗)과 금위(禁衛)의 배열(排列)하는 장소로 삼았습니다.”하니 태종이 그대로 따랐다.





1419년 3월 2일 세종이 사직단(社稷壇)의 담을 수리하였다. 12월 27일 비 개기를 사직에 빌었다. 1420년 4월 27일 예조에서 계하기를 “일찍이 왕지를 받들어 북교(北郊)에서 기우(祈雨)하는 것과 사직단·태묘·5악(五嶽)·5진·4해·4독·명산·대천에 나아가 기우제 지내는 것을 거행하지 아니한 곳이 없었사오나, 이제까지 비가 오지 아니하오니, 다시 5악과 4독에서부터 시작하여 처음과 같이 기우하는 것이 좋을까 하나이다.”하니, 세종이 그대로 허락하였다. 1430년 12월 8일 예조에서 아뢰기를 “큰 제사인 대사(大祀)인 사직단(社稷壇) 단유(壇壝)의 체제는 4방 2장(仗) 5척(尺)·높이 3척 4방으로 낸 계단이 3층씩이며, 양쪽으로 작은 담인 유(壝)를 친다. 자는 영조척(營造尺)을 사용합니다.” 하였다.





1445년 2월 24일 예조에 전지하기를 “모든 재계(齋戒)는 사직단(社稷壇)·영녕전(永寧殿)·태묘(太廟)의 큰 제사 때는 3일로 하고, 문선왕 석전(文宣王 釋奠)·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우사단(雩祀壇)·선농단(先農壇)·선잠단(先蠶壇) 등 보통 제사 때는 2일로 하고, 모두 임금이 친히 향과 축문을 전하고, 이상 각 처의 기도드릴 때와 선왕(先王)과 선후(先后)의 기일(忌日)에는 재계를 1일로 하는데, 위 각 항의 재계일에는 궐내(闕內)와 헌관(獻官)과 여러 집사(執事)들은 무릇 잔치로 즐기는 일, 사냥하는 일, 형벌하는 일, 가축잡는 일, 상사에 곡하는 일, 문병하는 일, 더러움에 관한 일, 매운 푸새먹는 일, 술 마시는 일들을 일절 금할 것이고, 다만 예문 중에 ‘술을 마시되 취하기에 이르지 아니 한다.’란 말이 있고, 가례(家禮)에 ‘사철 제사에는 3일 전부터 재계한다.’하고, 주해(注解)에 또한 ‘술을 마시되 난잡하는 데 이르지 아니한다.’란 말이 있으니, 금후로 재계할 때는 목욕이나 새벽에 일어나서 한두 잔만 마시게 할 것이며, 또 각 관청에서는 고문이나 사형이나 판결·처벌 등의 일을 또한 다 금지하게 하라.”하였다.





사직단은 대사(大社)를 제사하되 후토씨(后土氏)로써 배향(配享)하고, 대직(大稷)을 제사하되 후직씨(后稷氏)로써 배향한다. 사(社)는 토신(土神)이요, 직(稷)은 곡신(穀神)이다. 대사는 단(壇) 위의 남방(南方)에 동쪽 가까이 북쪽을 향하여 있는데, 후토씨는 대사 신위(神位)의 왼쪽에 북쪽 가까이 동향(東向)하여 있고, 대직은 단 위의 남방에 동쪽 가까이 북향하여 있는데, 후직씨는 대직 신위의 왼쪽에 북쪽 가까이 동향하여 있다. 자리는 모두 왕골자리인 완석(莞席)으로 한다. 사직단(社稷壇)은 남쪽에 위치하여 북쪽을 향하니 방(方)이 2장(丈) 5척(尺)이요, 높이가 3척이며, 4방으로 섬돌이 나와 있는데, 각각 3층(層)이다. 방색(方色)의 흙으로써 꾸몄으며, 황토(黃土)로써 덮었다. 돌로 만든 신주(神主)인 석주(石主)의 길이는 2척 5촌(寸)이요, 방은 1장인데, 그 윗쪽을 뾰족하게 하고, 그 아랫쪽의 반을 흙으로 북돋우었으며, 단(壇) 위의 남쪽 섬돌 위에 당하게 한다. 양유(兩壝)는 매 유(壝)마다 25보(步)이니, 이 것을 장(丈)으로써 계산하여 6척으로써 1보(步)로 삼는다면 15장이나 된다. 자는 영조척(營造尺)을 사용한다. 30보 안에서는 나무하고 농사짓는 일과 행인(行人)의 내왕을 금단(禁斷)한다.





1471년 8월 3일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문헌통고(文獻通考)의 주자사직단설(朱子社稷壇說)에 ‘예감(瘞坎)은 제단(祭壇)의 북쪽 임방(壬方)으로 한다.’ 하고 그 주(註)에 ‘예감이 제단의 임방에 있다는 것은 바로 북쪽 토담인 북유(北壝) 안의 양쪽 제단 가에 각각 중앙에 있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습니다. 북쪽 토담 안의 제단 가에다 고쳐 설치하게 하소서.”하니, 성종이 그대로 따랐다.





1607년 6월 9일 좌승지 이선복(李善復)이 예조의 말로 아뢰기를 “사직단(社稷壇) 밖 남·서·북(南西北) 3면의 허다한 소나무를 송충이가 잎을 갉아먹어 보기에 매우 놀라운데, 사직서의 관원(官員)은 시종 제조(提調)에게 말하지 않아 단수(壇樹)가 거의 고사(枯死)하게 만들었으니 그런 자들에게 위촉(委屬)할 수 없습니다. 장무 관원(掌務官員)을 먼저 추고하여 치죄하고, 벌레잡는 일은 해당 관원이 전혀 마음을 써서 거행하지 않으니, 한성부 낭청으로 하여금 방민(坊民)을 많이 거느리고서 본서의 관원과 함께 기어이 다 잡아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선조가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1585년 8월 1일 선조가 친히 사직단에 제사를 올렸다. 그런데 제물을 진설할 무렵에 국직(國稷)의 위판(位版)이 없어졌으므로 급하게 허위(虛位)를 설치하고 제례를 마치고 나서 대대적으로 수색하여 사직단의 담장 옆 나무 밑에서 찾았다. 이에 의심이 가는 자를 국문하니 수복(守僕) 주홍(朱紅)이 서관(署官)을 모함하려고 한 짓임이 밝혀져 대역죄로 논하여 처형하고 처자는 연좌시켰다. 참봉 최철견(崔鐵堅)·나급(羅級)은 잡아들여 형문하고 결장(決杖)하여 파직시켰다.





1720(숙종 46)년 3월 2일 사직단(社稷壇)의 신문(神門)이 무너졌다. 이 날 한성과 지방에 큰 바람이 불어 사직단의 신문 3간이 넘어져 부서졌고 주춧돌이 모두 뽑혀 넘어졌다. 1760년 6월 2일 영조가 사직단에 나아가서 재숙하고 단소를 봉심한 뒤에 이어 성기(省器)와 성생(省牲)을 한 다음 전교하기를 “옛 날 친향(親享) 뒤에 달포 동안 쇠고기를 들지 않는 것을 내가 우러러 본 적이 있다. 지금 제기를 봉심하려고 신주(神厨)의 문에 들어서니 희생이 이미 올라와 있는데, 소는 그 한가운데에 서 있고 뭇사람들이 빙 둘러 서 있었다. 이는 희생을 도살(屠殺)하려고 그러한 것이니 보기에 불쌍하기가 제 선왕(齊 宣王)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불쌍히 여긴 심정 정도가 아니었다. 번육(膰肉)을 받는 것도 중대한 예식인 만큼 희생을 빼놓을 수는 없으니, 이 번에는 양육(羊肉)만 올려서 지난 날의 성덕(聖德)을 본받겠다는 나의 뜻을 내보이라.”하였다.





1897년 10월 8일 장례원 경(掌禮院卿) 김영수(金永壽)가 아뢰기를 “사직단(社稷壇)의 위판(位版)을 태사(太社), 태직(太稷)으로 고쳐 써야 하니, 고쳐 쓰는 길일은 음력 9월 14일로 정하되, 응행 절목(應行 節目)을 봉상사(奉常司)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며, 서사관(書寫官)은 궁내부(宮內府)로 하여금 차출(差出)하게 하소서. 먼저 사유를 고하는 고유제(告由祭)와 봉안제(奉安祭)는 때에 맞추어 설행(設行)하소서. 제문은 홍문관 시독(弘文館 侍讀)으로 하여금 지어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고조 건양대군주(1896-1897) 폐하가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모두 아뢴 대로 하라. 제문은 직접 지어서 내리겠다.”하였다.1908년 1월 20일 이토 히로부미 일본 통감이 황단(皇壇), 태묘(太廟), 사직단(社稷壇)에 지내는 대제(大祭) 때에 3헌관(三獻官)을 1원(員)이 아울러 행하며, 그 아래 여러 집사(執事)들도 혹 아울러 하게 하거나 혹 인원수를 줄여서 적당히 배치하는 문제를 장례원(掌禮院)에 통지하여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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