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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라오름한라산의 숨겨진 보석이 찬연히 빛나던 날
정은선 기자  |  esjeong@leisur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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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1.21  17: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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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있었다. 단풍나무 서어나무 물참나무 오순도순 숲을 이뤄 고요하고, 가녀린 산새들의 노래가 바람결에 아련한 선율로 귓바퀴에 스미던 길. 늦은 가을 우수수 떨어진 낙엽 밟으며 낮은 언덕에 올라서면 그곳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산 속 깊은 곳에 어찌 이런 호수가 숨겨져 있었을까, 싶게 사면이 완만한 능선으로 에둘러져 포근함이 밀려오는 곳. 첫 대면의 순간은 홀연히 맞닥뜨린 황홀한 평화 바로 그것이었다. 접시에 부어 놓은 물처럼 잔잔한 수면은 실바람에도 수줍게 찰랑대며 쏟아지는 햇살에 물비늘이 보석처럼 빛났다.

   
▲ 사라오름
 소설(小雪) 지새고 사라오름을 찾아간 날, 놀라운 풍광이 펼쳐진다. 겨울에야 볼 수 있는 서리꽃이 호수 사면을 병풍처럼 두른 것이다. 폭풍설 속에 바람과 안개가 제 몸을 섞으며 피워낸 저 황홀한 서리꽃이 말간 하늘 아래 찬연히 빛나는 것이다. 아, 사라오름이여,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물결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여. 제주가 세계 7대경관에 선정된 것은 어쩌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 것이다. 호수면에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저 윤슬을 보라. 그것은 빛나는 보석인 것이다. 바람과 햇살, 물과 구름이 빚어내는 저 찬란한 아름다움, 어느 것이 하늘이고 어느 것이 물인가.

 문패도 어쩜 그리 어울리게 잘 달아놓았을까. 사라오름. 한라산정의 장엄한 백록담이나 밑창이 터질 만큼 깊어서 전설 속의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는 물장올의 비장미와는 유다른 사라오름의 산정호수는 살가운 어미의 따스한 품에 안긴 것처럼 아늑하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사라오름의 호수면은 어릴 적 콤파스로 동심원을 그려놓은 듯 동그란 것이 꼭 한가위 보름날 떠오른 달덩이 같다. 호수의 둘레는 어림잡아 250여 미터, 호수를 빙 두른 오름 정상의 능선 둘레는 1km 남짓하다. 가장 높은 곳의 해발고도가 1325m. 울울한 한라산 원시림 꼭 한가운데 솟아 있는 셈이다.

   
▲ 사라오름
 화산폭발 시 형성된 화산쇄설물, 송이가 가득 고여 있는 사라오름의 분화구는 비가 올 때만 호수를 이룬다. 한여름 폭우가 내린 뒤 호수 가득 출렁이는 물결이 사라오름의 백미다. 바람 잔 어스름 무렵이면 노을빛 붉게 물든 한라산 정상의 그림자가 호수에 스며들어 환상적 풍경을 빚어낸다. 갈수기에는 푸른 호수 대신 널따란 분지가 형성되고 겨울이 되면 어느새 빙판을 이루며 계절 따라 색다른 멋을 선사한다. 한라산 국립공원 지정 이후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사라오름이 11월 1일 마침내 일반에 공개되며 신비의 호수를 세상에 드러냈다.

   
▲ 사라오름
 호수 남쪽에 있는 전망대에 서면 한라산 정상이 구상나무 주단을 깔고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며 솟아있고 맞은편으로는 성널오름과 논고악, 동수악을 비롯한 제주 동부지역의 오름이 한 눈에 잡힐 만큼 전망이 시원스럽다. 수평선 맑은 날에는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아련하게 다가온다. 호수 맞은편엔 새색시 볼처럼 불그레한 흙붉은오름이 수면 위로 머리를 빼꼼 내민 개구리처럼 하늘금을 그리고 있다.

 사라오름은 본래 '신성한 곳'을 뜻하는 고어(古語)에서 유래됐다. 깊은 산 고요한 곳에 자리한 산정호수에 걸맞은 작명일 듯싶다. 탐라왕국의 도읍지 제주의 진산(鎭山)도 그래서 사라봉(紗羅峰)이다. 풍수학에서도 사라오름은 제주의 6대 명혈 가운데 으뜸으로 쳤다. 개미목과 영실(靈室)이 사라오름의 뒤를 잇는다. 그래서인지 호수 사면의 양지바른 숲에 묘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 사라오름
 사라오름의 전망대 남동사면은 제주조릿대로 무성하다. 인근의 숲과는 대비되는 모습은 바로 이십 년 전 발생한 산불 때문이다. 사라오름 남사면에 자연 방화선을 이루는 수악계곡 상류가 불길을 막아 오름의 허리 일부만을 태웠고 그 생채기만 남아 있다. 조릿대 무성한 사면 한가운데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은 참빗살나무의 빨간 열매가 햇살 속에서 빛을 발한다. 시련 속에서도 스스로를 치유하는 자연, 그 속에 깃든 생명의 뿌리는 늦가을의 열매처럼 찬연(燦然)하다.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의 명소로 알려진 수악계곡은 사라오름 남사면에서 발원하여 한라산 허리를 적시며 바다로 흘러든다. 해발고도에 따라 갖가지 희귀수목이 자라는 계곡 일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특히 사라오름과 보리악 사이의 용암협곡은 제주의 산악인들 사이에서도 한라산의 가장 험난한 계곡으로 명성이 나 있다. 수악계곡의 원류 중 하나인 사라오름 남쪽 사면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샘이있다. 이 샘에서 물을 끌어다 만든 것이 바로 성판악 등산로의 사라샘물이다. 샘물에서 계곡까지는 무려 4km를 흘러도 시원함이 고스란히 남아 산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 사라오름
 찾아가는 길 :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2-1(http://dmaps.kr/88am)
사라오름 들머리는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 한가운데 지점인 성판악이다. 이곳에서 사라오름까지 거리는 6km, 왕복 4-5시간 정도 걸린다. 사라오름까지는 고도차가 완만한 숲길이어서 걷기에는 큰 무리가 없으나 산행 초보자들에게는 그래도 버거운 산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11월의 사라오름은 한겨울 못지않게 추운 날씨를 보인다. 따뜻한 겨울옷과 장갑, 귀막이 모자를 꼭 준비해야 한다. 성판악코스를 따라 5.8km 지점에 사라오름 올라가는 이정표가 있다. 등산로에서 사라오름 호수까지 거리는 200여 미터 남짓. 호수 시계방향으로 탐방객들을 위한 목재 계단길이 사라오름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사라오름 등반 후 등산로를 따라 정상까지 갈 수 있기는 하지만, 일몰 전 하산을 위해서는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 12시부터 진달래밭대피소에서 정상등반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사라오름과 정상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서는 아침 8시 이전에는 등산로 들머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상 등정 후에는 관음사코스를 하산길 여정으로 잡아도 좋다. 왕관능과 장구목, 삼각봉 등 한라산의 비경이 모여 있는 용진각 일대를 지나기 때문이다. 계절 따라 옷을 바꿔 입는 한라산 최대의 하천 탐라계곡의 신비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산행 초보자라면 성판악에서 정상을 먼저 등반한 후 하산길에 사라오름을 들르는 편이 낫다. 사라오름 입구 등산로에서 전망대까지는 대략 20여분이면 충분하다. 샘은 5km 지점 한 군데만 있다. 성판악휴게소에서 김밥과 간식, 등산장비도 구입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아침 산객들을 위해 해장국도 판다. 한라산 인근에는 관음사등산로 입구에 야영장이 있다. 이곳에서 야영을 할 양이면 관음사코스로 정상 등정 후 성판악코스로 하산 중 사라오름으로 갈 수 있다. 이 때도 역시 아침 8시 이전에 등산을 시작해야 일몰 전 하산이 가능하다. 관음사 등산로 들머리에도 관음사휴게소에서도 김밥과 간식, 등산장비 구입이 가능하다.

 ※교통편
제주시와 서귀포에서 아침 6시부터 시외버스가 오간다. 제주와 서귀포에서 성판악까지 30-40분 걸린다. 평소에도 한라산 정상을 찾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성판악은 11월 1일 사라오름이 개방된 후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 성판악 주차장은 매일 초만원을 이룬다. 심지어 도로 양편에 길게 늘어선 차량 때문에 교통 혼잡이 극에 달하는 주말에는 승용차 대신 버스를 타고 가는 편이 훨씬 낫다.

정은선 기자  esjeong@leisur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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