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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이의 오름이야기(9)큰물메(大水山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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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2.01  16: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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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체국이 서있는 고성리 사거리에서 성산일출봉을 뒤로하고 한라산 방면으로 500여M를 가면 왼편으로 '난고로'라는 새로 난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다시 500여 미터를 가면 오른쪽에 자그마한 주차장과 함께 大水山峰(큰물메)라는 안내표지를 만날 수 있다.

   
▲ 유건에오름에서 바라본 큰물메, 이곳에서 바라보면 성산 일출봉과 겹쳐 보인다.
 행정구역상 성산읍 고성리와 수산리 그리고 온평리의 경계에 위치하는 오름이다. 그래도 번지는 고성리로 되어있어서 성산읍 고성리가 이 오름의 주인인 셈이다. 해발고도 137미터, 비고는 97미터다.

 예전에 굼부리에 물이 있어서 물메라고 불리던 것이 인근에 있는 오름과 합쳐 큰물메 족은물메로 불린다. 즉, 이 오름 동쪽에 있는 자그마한 오름이 족은물메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물이 있었으나 송나라 지관인 호종단이 수맥을 끊어버려서 지금은 물이 없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굼부리의 형태나 크기로 봐서 별로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 오름 입구에 안내표시를 해놓았는데 성산일출봉 사진을 달아놓았다. 성산일출봉의 위세 눌렸나?
 이 오름 역시 마을사람들이 운동 삼아 많이 찾는 탓에 등산로를 잘 정비해 놓았다. 중간 중간 의자도 설치하여 지친다리를 쉴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하지만, 몇 번 쉬어갈 정도의 거리는 아니고 20분 오르니 정상 인근 공터에 다다른다. 이곳에 간단한 운동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맨발로 걸어보라고 자갈길도 만들어 놓았다. 묘가 몇 기 있는데 산담을 시멘트로 발라놓은 것이 영 눈에 거슬린다 역시 산담은 제주 현무암으로 만들어야 제 맛이다.

 오름 전체가 삼나무나 소나무 등으로 푸르게 덮였는데 이곳 정상 언저리만은 마치 조망을 위하여 일부러 만든 듯 초지로 이루어져있다. 덕분에 바로 눈앞에 성산일출봉이 위용을 드러내고 오조리에서 성산일출봉을 거쳐 섭지코지로 이어지는 제주도 최고의 해안선이 선명하게 펼쳐진다. 아마도 성산일출봉을 가장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여기 큰물메의 정상일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성산일출봉은 제주의 창조주 설문대 할망이 길쌈을 할 때 불을 밝혔던 등경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럴 듯하기도 하다.

 일출봉을 감상하기 좋은 만큼 일출을 보기에도 좋은 곳이어서 새해 첫날이 되면 수많은 인파가 일출을 보러 몰려들기도 하는 오름이다.

   
▲ 성산일출봉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왼편으로 소가 드러누운 형상이라는 우도가 보이는데 요즘 각광받는 관광지 중 한 곳이다. 이른바 '섬 속의 섬'으로 불리며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우도는 골칫거리였다. 바로 왜구들의 근거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본섬에 딸린 부속 섬들은 자체방어가 어려워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이곳을 왜구들이 아지트 삼아 풍랑이 잦아지면 노략질에 나서곤 했던 것이다.

 본래 고성리라는 마을 이름도 예전에 읍성이 있었다는 뜻인데, 조선 초기 제주에 삼읍체제가 들어서면서 1416년 이곳에 정의현성이 들어섰다. 그런데, 그때부터 읍성이 현의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행정상 불편하고 또 우도가 왜구의 소굴이 되기 쉬워 성을 옮기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8년 후인 1423에 지금의 성읍리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하여 마을이름이 고성리가 되고 1439년 왜구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수산리에 수산진성이 설치된다. 같은 이유로 비양도 앞에는 명월진이, 차귀도 앞에는 차귀진이 설치된다.

 다른 곳보다도 이 섬 우도가 일본과 가까운 동쪽에 위치해 있고 또 섬의 크기가 큰 탓인지 왜구의 출몰이 잦아, 가까운 인근 지금의 하도리에 다시 진성을 하나 더 설치하는데 본래의 김녕방호소를 옮겨 별방진이라 하였다. 그 이름부터가 특별한 방어가 필요한 곳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니, 왜구들이 얼마나 골칫거리였는지 짐작이 간다.

 임진왜란 당시 제주목사였던 이경록이 성산일출봉이 천혜의 요새라 하여 진을 옮기기도 하였으나 그 후임으로 부임한 성윤문목사는 일출봉에 물이 없어서 왜적이 길목을 끊으면 위험하다 하여 다시 수산으로 되돌아온 이력도 있다.

 시야를 서쪽으로 돌리면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는데 바로 이곳이 수산평이다. 고려말 몽골이 제주를 지배할 때 이 수산평에 처음으로 말을 풀어 키우기 시작했다. 1276년의 일이다. 이후 규모를 키워 이곳에 동아막을 설치하고 한경면 고산리에 서아막을 설치하여 그 규모를 전도로 확대하였다.

 원나라가 망한 뒤 이 목장은 고려에 귀속되었고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전도에 10소장을 두어 국마장체제로 운영하게 된다. 제주에 부임하였던 목사들은 말을 잘 키우고 올려 보내는 일이 중요했던 탓에 목민보다 목마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오름 정상엔 봉수대 터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곳 수산봉수는 북동쪽으로 성산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독자봉수와 교신을 하였다. 또한, 이 봉수대에서 봉화를 올리면 마을에 불이나는 경우가 많아 마을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봉수대 쪽으로 생울타리를 높게 쌓았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 봉수대터. 이곳 수산봉수터는 그나마 목책이라도 둘러 보존해 놓았다.
 등산로 일부가 올레 2코스와 겹치는 탓에 올래꾼들을 위한 표식들도 군데 군데 눈에 띄고 여느 오름에서도 흔한 보리수가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다. 굼부리를 돌아 내려갈 수 있도록 길이 나 있는데 오름의 크기에 비추어 굼부리는 자그마하다. 이곳에 물이 고였었다니 도저히 믿음이 가질 않는다.

 하산길로 접어드는데 한라산 위로 해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내 고향이 서쪽인지라 바다로 떨어지는 해만 보아왔는데 여기서 한라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본다. 그러고 보니 일출을 맞이하는 곳에서 석양을 감상하고 있다.

 이제 12월, 올해도 우물쭈물 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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