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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깃발만 나부끼는 '협치'
강민식 기자  |  kminsik@leisur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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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28  15: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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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꼴 위 오른쪽 하단에 황금색 사선 하나를 긋고, 그 한 복판에 짙은 자홍색 성 앤드류 십자가를 놓고, 일반 의장은 머리를 쳐들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개로 하자… 톱니 모양의 상단은 녹색 산형으로 하자. 하늘색 바탕에는 세 줄로 된 나선형 줄을 넣고, 깊이 파낸 톱니띠에는 태점 몇 개가 앞발을 쳐들고 있는 것을 집어 넣자. 식장은 도망친 검둥이 노예가 왼쪽으로 굽은 막대기에 보따리를 어깨 위에 걸머메고 있는 도안을 흑색으로 표시하자. 그리고 적선 두 개가 떠받들고 있는 건 너와 나야. 표어는 ‘마지오레 프레타, 미노레 아토’구”

마크 트웨인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일부분이다. 톰 소여는 헉(허클베리 핀)과 함께 흑인 노예 짐을 탈출시키려고 한다. 탈출은 아주 쉽다. 그러나 톰은 짐에게 문장(紋章)을 만들라고 강요한다. 짐과 헉은 톰의 억지에 난감해 한다. 그냥 탈출하면 될것을 쓸데없이 무슨 문장이냐는 의문이다. 윗 글은 짐이 생각해낸 문장 디자인이다. 톰이 문장 만들기를 강요하는 이유는 탈출이 멋있어야 한다는 것. 영국의 유명한 누구도 그랬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토리가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紋章)은 국가나 가문, 단체, 개인 등을 상징하는 상징표이다. 미드<왕좌의 게임>에는 각 가문의 문장이 나온다. 문장은 그 가문을 나타내고 상징한다. 스타크 가문 문장에는 늑대 그림과 함께 하단에는 가언인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가 적혀 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팀의 엠블럼도 문장이다. 삼성로고를 가슴에 붙이고 경기하는 첼시의 엠블럼에는 사자가 있다. 캐드건 백작의 문장에서 인용한 것이고 2개의 장미는 잉글랜드를, 2개의 원은 축구를 상징한다고 한다.

문장은 하고싶은 말과 이상을 극도로 집약해 나타낸다. 정치인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문장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 권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대부분 인정해주지 않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신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우근민 전 지사와 원희룡 현 지사. 무엇이 달라졌는가

원희룡 지사는 협치를 문장의 중심에 놓은 것 같다. 우여곡절끝에 제주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3월 어느날 관덕정에서부터 듣기 시작한 ‘협치’는 올 한해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 중 첫머리에 둬도 무방할 정도이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2014년 연말에 느끼는 ‘협치’는 공허하다. 중심은 사람일터인데 정작 사람은 없다. 협치는 높이 들어올려진 깃발에만 적혀 있고, 깃발 아래서 이뤄진 인사는 적확한 측근 나눠먹기다. 협치 방안이라며 수용한 인사청문회는 말 그대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이성구 제주에너지공사를 임명하며 “부적격은 2번이 아니라도 10번이 나와도 수용한다”던 말은 손정미 제주컨벤션센터 사장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최고 MICE 전문가인데 실전 경험 없다고 하면…”이라며 속내를 드러낸다.

“도의원들이 조금 사심 내지는 욕심이 껴서 1인당 20억씩 보장을 해달라는 조건을 옆에서 내걸었어요”발언은 화해 와중에 부잣집 친정으로 달려가 고자질하는 철없는 며느리에 다를바 아니다. “의장님 자신은 좀 순수했는지 모르지만”은 구성지 의장을 정면에서 모욕한다. 이후에 벌어진 사달은 도민이 모두 안다. 원희룡 지사가 사과하고, 박정하 부지사는 20억 발언이 도의원들이 아니라 구성지 의장 작품이라고 밝힌다. 이 모든 것은 협치 깃발 아래 소동이다.

톰 소여 짐에게 문장을 만들라고 한 것은 스토리를 위해서다. 원희룡 지사는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2014년, 협치로 인해 만들어진 스토리는 없다. 오히려 협치는 의구심을 받을 정도로 충분히 오염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녹색경제’만큼이나 쌩뚱맞다.

흑인 노예 짐이 문장에 쓰일 표어로 만든 말은 ‘마지오레 프레타, 미노레 아토’이다. 마크 트웨인이 말해주는 이 말의 뜻은 ‘서둘면 서둘수록 느려진다’이다.  

강민식 기자  kminsik@leisur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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