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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의 카데시 전투- 두 전차 왕국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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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5  19: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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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는 모처럼 고대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전차군단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히타이트와 이집트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엑소더스에서 람세스 2세와 모세의 갈증이 시작되는 카데시 전투인데, 영화에서는 이집트가 일방적으로 공격해 승리하는 장면처럼 아주 간단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집트의 기록을 따라야 그 이후의 이야기 진행이 되기 때문에 실제 고증은 일부러 무시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람세스 2세가 부대를 나누어 공격하려고 하니까 모세가 중앙집중을 주장하다가 거절당하죠. 그런데 공격장면에서는 모두 뭉쳐가더군요. 실제 카데시 전투는 영화와 달리 이집트군이 수세에 몰렸었고 전차로 진영에 뛰어든 것은 히타이트군이었습니다.

   
▲ 사진=위키피디아

두 전차 왕국의 충돌
기원전 1275년, 히타이트(Hittite)와 이집트 왕국은 역사 최대의 전차(Tank가 아닌 Chariot)전을 벌였다. 카데시(Kadesh) 전투에서, 현재의 시리아를 놓고 벌인 오랜 갈등 끝에, 히타이트는 전차기동전술로 이집트에 맞섰는데 규모가 엄청났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전술이었다.

히타이트가 새로운 전술을 개발해 전장에 적용할 수 있었던 중심에는, 킥쿨리(Kikkuli)라는 말조련사가 새로 만든 전차가 있었다. 킥쿨리는 기원전 14세기 중반에 히타이트 군에 합류해 수필루리우마(Suppiluliuma) 1세의 군마를 조련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투용 말을 조련하는 7개월짜리 교육 매뉴얼을 만들었다. 4각 진흙판에 히타이트 말로 기록한 킥쿨리의 교과서는 수 천 년이나 지난 지금도 놀랄 정도로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매뉴얼은 '미타니 출신의 말 조련사 킥쿨리가 말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기록으로 그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킥쿨리의 가르침은 문학적 수사가 없이 직설적이고 간결하며 군더더기가 없다. 말에 대해 개인감정을 일체 싣지 않았다. 말이 정신과 육체적으로 전장에서 제 역할을 다 하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기 때문이다.

애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보면 말의 건강에 대해 신경을 가장 많이 쓰고 있다. 군마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강인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이 전장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어야 했다. 그는 정신과 육체의 강인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키우고 조련하면서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자질이 먼저인지 교육이 먼저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킥쿨리는 교육을 통한 후천적 개발을 믿었고 말이 건강해야 다음 교육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실용주의 입장에서 인간적인 훈련을 지지했지만 군마육성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킥쿨리는 어린 말의 성장과 훈련적응 속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성장보다 훈련이 훨씬 오래 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 단계에 걸쳐서 조련했는데, 처음 두 단계는 골격과 심혈관계 개발을 강조했고 마지막 단계는 신경계 개발에 집중했다. 말이 자신감을 느끼도록 근육과 심장-폐 기능을 강조했다. 요즘의 무산소 근지구력 훈련(Interval Training)과 비슷한 훈련을 했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걸음걸이(전력질주, 깡총뛰기, 걷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잠깐 훈련을 멈춘 동안 심장박동이 느려지는데 조련사는 정상 심장박동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훈련을 재개했다. 훈련을 하는 동안 심장은 다양한 압박을 받았고 걸음걸이와 훈련시간을 바꾸면서 말이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에 견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 리들리 스콧 감독 작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이 영화에서 묘사한 카데시 전투는 '전투'가 아니라 이집트가 벌이는 진압이나 토벌 수준으로 그린다.

킥쿨리는 하루 최대 3번의 훈련을 했고 아예 며칠 동안 계속 반복하기도 했다. 중간에 훈련을 줄이거나 아예 안 하는 날도 있었다. 조련 초기단계에서는, 말을 전차에 묶고 계속 끌고 다니게 했는데 이 과정을 마치면 말은 다른 말과 함께 전차를 끌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말의 상태에 따라 탈진하지 않도록 맞춰서 훈련강도와 난이도를 계속 높였다. 말이 힘들어하면 휴식을 주거나 강도를 낮췄다.

킥쿨리는 4일 동안의 검사기간을 따로 가져서 더 이상 훈련하기 힘든 말을 추려내 제외시켰다. 훈련과정에는 수영과 야간훈련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리고 말에게 언제 무엇을 먹여야 할 지와 말을 목욕시키고 다듬는 방법도 설명했다. 체력훈련을 통과한 말은 전장에서 다른 말과 함께 전차를 끄는 본격적인 훈련을 시켰다. 다양한 속도로 급가속과 급선회, 정지, 엄호와 일렬전진과 같은 전차전의 특성을 배웠다. 특히 마부의 명령과 고삐질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배웠다.

킥쿨리의 조련덕분에 히타이트는 이집트보다 강한 군마를 얻게 되었다. 이집트 전차는 히타이트 전차에 비해 가볍고 작으며 바퀴 축이 뒤에 있어서 기동력이 좋았다. 더 크고 무거운 히타이트 전차는 느리고 기동력이 부족했지만 바퀴축을 중앙에 두어서 더 안정적이며 더 많은 사람을 실을 수 있었다.

히타이트는 이전보다 튼튼한 말과 여유 있는 전차를 갖춰 약 50년 동안 다른 나라보다 더 다양한 전술을 펼칠 수 있었다. 이전에는 전차와 함께 달리던 보병이 전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청동기 시대 전투에서는 보병이 전차와 함께 달리면서 전차가 공격 당하지 않게 엄호하면서 적의 보병과 전차를 공격했다. 그리고 마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공황에 빠진 말의 고삐를 잡아 진정시키는 역할도 했다. 전차와 보병의 호흡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전차는 전력질주하지 않고 속보정도의 속도를 유지했다.

3인승 전차는 전차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고대전투의 흐름을 바꿨다. 추가로 탑승한 보병은 이전과 달리 체력을 낭비하지 않았고 전차와 함께 이동할 수 있었다. 양쪽이 늘어서서 화살세례를 퍼붓다가 백병전으로 승부를 가르던 전투에서 벗어나, 히타이트 전차는 기병대처럼 진형을 갖춰 전장의 곳곳을 누비며 기습하거나 적의 대열을 분열시킬 수 있게 되었다.

무와탈리(Muwattalli)왕은 카데시 전투에서 3인승 전차를 선보이며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Ramesses) 2세의 군대에 맞섰다. 두 나라의 병력은 비슷했는데 잡다한 유형의 병사들로 2만명씩의 전력이었다. 그러나 히타이트는 3700대의 전차를 동원한 반면에 이집트는 2000대의 전투를 동원했다. 히타이트 전차가 전부 3인승은 아니었을지라도 킥쿨리의 조련 프로그램으로 양성된 말들이 끌었다.

이집트군이 진영전투(Set-Piece)에서 유리했기 때문에 무와탈리는 전차를 집중 투입해 기동전을 펼칠 생각이었다. 그는 전차기동에 유리한 평원지대인 카데시를 일부러 선택해 광범위한 전차전을 노렸다.

람세스도 카데시에서 히타이트군과 대결할 생각이었다. 무와탈리는 자신의 위치를 속일 생각으로 이중간첩을 이용해 자신이 아직도 카데시 북쪽 160km 떨어진 할레브(Haleb, 알레포)에 있는 것처럼 속였다. 전투 당일, 히타이트군은 카데시 북동쪽에 이미 진영을 차려놓은 상태였고 람세스는 기만작전에 완전히 속았다.

   
▲ 람세스 2세 전차. 사진=위키피디아

람세스군은 카데시 남서쪽에서 하루 정도 거리에 있었고 중장병, 경보병, 궁병으로 이루어진 보병 3500과 2인승 전차 500대씩으로 구성된 5000명 부대 4개로 진영을 만들었다. 최전열은 람세스가 지휘하는 아문(Amun) 부대가 섰고 쉐르덴(Sherden, 당시 지중해 연안의 보병) 보병이 측면을 보호했다. 그 다음에는 라(Ra), 프타(Ptah), 세트(Set) 부대가 각각 3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행군했다.

무와탈리는 이집트군을 분열시켜 각개격파할 생각이었는데, 람세스가 그의 계획을 도와준 셈이 되었다. 람세스는 무와탈리의 기만에 속아 그가 아직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무와탈리의 작전대로 움직였다. 카데시를 함락시킬 시간이 충분하다고 확신한 파라오는 아문 부대에게 도시를 포위해서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다른 부대는 상당히 느린 평소 진군속도로 그 뒤를 따랐다. 람세스의 아문 부대는 오론테스 강을 건넌 후에 카데시 평야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이동한 후에 본진을 차렸다.

히타이트군은 카데시 반대편에서 완벽하게 은폐하고 대기 중이었다. 람세스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아문 부대가 강을 건너 이동할 때에 히타이트군은 공격준비를 채 마치지 못했고 히타이트군이 요격에 나섰을 때에는 이미 카데시 북쪽으로 이동한 후였다.

무와탈리는 남쪽으로 전차부대를 이동시키고 보병은 아문 부대의 반격에 대비해 북동쪽에 그대로 두었다. 그 동안 아문 부대는 남쪽 상황에 대해 까맣게 모른 채로 진영 앞에 대형방패를 세우고 땅을 파는 작업을 마쳤다.

무와탈리는 아문 분대의 본진이 당분간 이동하지 않을 것을 알고 현명하게 중간을 끊기로 했다. 라 부대가 오론테스 강을 건너 평야로 들어서자 마자 2,000대의 전차가 모습을 드러내고 공격을 퍼부었다. 기습을 당한 라 부대는 미처 전열을 펼치지도 못하고 무서운 전차대의 공격 앞에 궤멸되었다.

무와탈리의 계획대로 전차대가 곧 나타날 프타 부대를 공격했다면 히타이트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겠지만 너무나도 손쉬운 승리가 거꾸로 모든 작전을 망쳐놓았다. 승리에 도취한 히타이트 전차대는 무와탈리의 명령을 듣지 않고 아문 부대의 본진으로 향했다. 방어준비가 잘 된 본진을 보병의 지원없이 전차만으로 공격하는 것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무와탈리는 전차대를 세우려고 노력했지만 라 부대를 궤멸시킨 전차대는 승리에 완전히 취해있었고 명령체계는 완전히 마비되었다. 전차대는 파라오를 잡아 전공을 세우고 본진의 보물을 약탈하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아문 부대를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아문 부대의 500대 전차들은 히타이트 전차부대의 맹렬한 돌격에 겁에 질려 전차를 몰고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람세스는 침착하게 남은 보병을 모아 과감한 반격에 나섰다.

일부 히타이트 전차가 방패를 넘어 본진 안으로 들어갔지만 마치 전투가 끝난 것처럼 약탈을 하다가 모두 죽었다. 람세스와 아문 부대는 단단히 방어태세를 굳혔고 히타이트 전차대는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 사진=위키피디아

전차대를 지휘할 수 없게 된 무와탈리는 전차대가 아문 부대의 본진을 그대로 공격하게 놔두고 보병은 북쪽에서 다가오는 또 다른 이집트 부대인 네아린(Ne'arin)을 맞을 준비를 시켰다.약간의 병력만 투입했어도 네아린부대를 계곡에 붙잡아 둘 수 있었지만 카데시 평야에서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러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 북쪽에서 네아린 부대가 합류하면서 람세스의 아문 부대는 히타이트 전차대를 오론테스 강 건너로 밀어냈고 카데시 전투는 이렇게 끝났다.

네아린 부대가 제 때에 합류하지 않았다면 람세스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집트군은 카데시 지역을 손에 넣었고 승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라 부대를 잃은데다가 나머지 부대도 많은 피해를 입어서 이집트로 곧바로 퇴각했다. 히타이트군도 큰 피해를 입어 과감한 작전을 펼치지 못하고 소심한 추격에 나섰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결국 히타이트는 아무루(Amurru, 카데시 남부)왕국을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에 람세스의 승리주장은 정신승리에 불과했다.

역사기록을 벽화나 몇 조각의 석판에서 찾을 수 있었던 시기의 전투였기 때문에 양쪽의 규모나 피해에 대해서는 많은 오차가 있습니다. 다른 자료에서는 이집트군의 규모를 2만명 정도로, 히타이트군은 5만명 정도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집트로 돌아간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와의 대결에서 평화를 선택하고 전략결혼도 성사되었습니다.

히타이트에 비해 이집트의 기록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고 그 영향으로 카데시 전투는 이집트 람세스의 대단한 전투인 것처럼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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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Uesgi
나름 유명했던 S/W 마케터, 야구와 게임을 좋아해서 사회인야구팀 감독 경험까지.지난 역사가 재미있어서 15년 동안 세계사 원서들을 읽고 모아왔습니다. 시간여유가 많을 때에 수 백권의 원서(Military History 등의 원서)들을 정리해서 다른 분들과 공유해볼까 합니다. 기록자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오류나 조언에 대해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영어와 같은 스펙쌓기도 좋지만, 역사를 통해 통찰력을 기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원문: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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