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로 중간, 교통의 요지로 유명한 마을인 대천동 사거리를 지나 성읍리 방향으로 향하면 오른편에 꿩엿을 만드는 공장이 하나 있고, 이를 지나면 지금은 쇠락해버린 조랑말 승마장이 폐허로 남아있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보면 말을 방목하는 목장 너머로 오름 하나가 대지에 포근히 앉아있다.

▲ 번영로에서 바라본 성불오름의 모습

 대천동에서는 봉우리가 봉긋한 오름으로 보이던 것이 이곳에 이르면 두 개의 봉우리와 가운데에 깊지 않게 패인 굼부리 형태의 오름으로 나타난다.

 이곳에서 보이는 모습 때문에 옥문형(玉門形)오름이라고 하며, 관광안내원들의 야담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성불오름

 해발 362m 비고 97m 평범한 정도의 크기를 갖는 오름이다.

 오름 정상에 박혀있는 바위가 스님이 염불하는 모습이라고 하나 수행이 모자란 탓인지 내 눈에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 보다는 예전에 성불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던 탓에 성불오름이라고 불린다는 말이 더 수긍이 간다.

 오름 자락에 넓은 조랑말 방목장이 있는데, 이 방목장 중간에 철조망을 따라 오름에 이르는 길이 나 있어서 찾는 이들을 편하게 해준다.

 예전에는 따로 길이 없어서 철조망을 넘어 다니곤 했었는데 목장 측의 배려로 보인다.

 하얀 눈이 쌓인 목장 길을 따라 오름 자락에 이르니 나무계단으로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 세 갈래의 길이 있는데 양쪽 봉우리를 향하는 길이 하나씩 있고 굼부리계곡을 지나 두 봉우리 가운데로 향하는 길이 하나 있다.

▲ 등산로를 따라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울창한 삼나무 숲 사이로 깔린 등산로를 따라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여느 오름에 비해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편이라서 그다지 힘든 길은 아니다.

 20여분을 올라 능선 길에 다다르니 사방이 컴컴하고 눈이 쏟아져 내린다.

 능선 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억새가 가득한데 화려한 잔치는 끝나고 말라버린 잔해만 남아 눈과 바람에 시달리고 있다.

▲ 밖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달리 오름 능선에는 억새길이 펼쳐진다.

 큰사슴이 오름이 이웃해 있는데도 분간이 가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올해 들어 제대로 맞이하는 첫눈인 셈이다.

 능선을 따라 5분여를 걸으면 바위가 박힌 정상에 다다른다. 바위 남쪽은 급경사를 이루며 깎여나갔고 바위에 군데군데 철쭉나무들이 숨어있다. 추운 겨울을 인내하며 봄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 남쪽에 따라비오름이 보이는데 눈이 쌓여서 등산로가 선으로 드러났다.

 잠시 눈이 그치며 주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상 남쪽으로는 골프장이 예외 없이 눈을 뒤집어쓰고 있고, 그 너머에 큰사슴이오름이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그 왼편으로 유명한 따라비오름이 보이는데 역시 눈이 쌓이다보니 등산로가 하얗게 드러났다. 길 건너 동쪽에는 꿩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 비치미오름이 길게 엎드려있다.

▲ 왼쪽 정상에 하얀눈을 이고 있는 오름이 꿩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 비치미오름이다. 그리고 오른편은 개오름인데 멍멍이를 뜻하는 개가 아니고 뚜껑을 덮어 놓은 모습이라서 盖(덮을 개)오름이다.

 이 주변에 꿩이 많은지 꿩엿공장도 있고 꿩이 날아가는 오름도 있다. 하기사 이곳만이 아니라 제주도 전 지역이 꿩이 많은 섬이기도 하다.

 엿. 어릴 적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맛있던 간식이었다. 온갖 고철과 술병을 주고 바꿔먹던 엿과 달리 이곳 집집에서 만들어 먹던 엿은 딱딱한 형태가 아니라 수저로 떠 먹는 겔 형태의 엿이었다. 또한 쌀이 귀했던 제주에서는 엿을 좁쌀로 만들었다. 같은 이유로 술도 좁쌀로 빚었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엿에 꿩고기를 넣기도 하고 마늘을 넣기도 하며 때론 돼지고기를 넣기도 하였다.
그래도 그 중에 으뜸은 역시 꿩고기를 넣은 꿩엿이었다.

 몇 년 전 동생이 전화가 왔다.

 "형님 꿩이 두 마리 생겼는데 오랜만에 엿을 만들어 보지 않을래요. 아이들에게도 좀 먹이고"
  "좋다"

 그렇게 두 형제가 의기투합하여, 오일장에 가서 좁쌀과 골(엿기름)을 사들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어머님의 지도가 필요했고 또 마당에 솥을 걸어 앉혀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머님의 지도에 따라 먼저 꿩을 삶고 고기를 건져낸 다음 그 국물에 좁쌀로 밥을 짓는다. 밥이 익으면 넓은 대야에 퍼내서 적당히 식힌 다음 엿골(엿기름)을 골고루 섞고 두세 시간 숙성을 시킨다.

 밥이 보슬보슬해지면 물을 붓고 고운 천으로 국물만 짜내는데 이제 이 국물에, 건져서 뼈를 발라두었던 꿩고기를 넣어서 은근한 불로 끓이면 된다.

 이 과정들이 시간이 필요한 작업들이어서 불에 졸이는 작업은 밤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졸음을 참아가며 불의 세기도 잘 조절해야 되고 눌어붙지 않도록 잘 저어 주기도 해야 한다.

 어머님의 가르침과 두 형제의 노력으로 나름 흡족한 꿩엿을 완성시켜 냈다. 그리곤 조금씩 나누어서 집에 들고 왔는데 "에이 별루 맛이 없네.."라는 아이들의 냉정한 평가에 하루 낮 하루 밤의 수고는 모두 날아가고 말았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더니 세월 따라 아이들의 입맛도 변하는 것을..

 지나온 길을 뒤로하고 오름 왼편 등산로를 따라 하산하기로 했다. 이쪽도 삼나무와 소나무가 많기는 한데 중간 중간 보리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수종이 어우러져 있다. 역시 숲은 한 가지 나무가 독점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종이 어우러져 자라는 곳이 보기가 좋다.

▲ 청미래덩굴이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는데 이 마른 잎사귀에도 어김없이 눈이 내려앉았다. 어릴적 저 빨간 열매를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곤 했었다. 물론 먹기도 했다 완전히 익기 전에.

 굼부리에 샘이 있어서 성불천이라고 하는데 이 샘물이 굼부리와 이어진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린다. 정의현성 안에 샘물이 없어서 이 샘물을 길어다 썼을 정도로 귀중한 샘물이었다.

 다시 방목장으로 나오니 눈보라에도 아랑곳없이 조랑말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 오름전문가 김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