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뜨는 태양과 오늘 뜨는 태양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이지만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읽어 달을 나누고 해를 나눈다. 어쩌면 그런 시간의 나눔을 통해서 슬픔은 털어버리고 새로운 희망은 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시기가 왔다.

 이즈음 사람들은 해넘이가 아름다운 곳을 찾아 한해를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하고 또 해돋이가 아름다운 곳을 찾아 새로운 희망을 간직할 것이다.

 범부에 지나지 않는 나 역시 주말마다 오름으로 동행하는 지인들과 한해의 마지막 날 해넘이를 찾아 떠나고자 한다.

▲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절울이오름 야트막한 모습이지만 굼부리 안에 솟은 오름은 경사가 크다.

 절울이오름

 태평양의 파도가 밀려와 단애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며 울음을 토해내는 곳, 이중화산체로 지구과학의 보고인 오름.

 같은 장소에서 해돋이와 해넘이를 모두 볼 수 있는 오름. 근래 소나무가 많은 오름이라고 거의 송악산을 불리고 있으나 본래의 이름은 절울이오름이다.

 파도를 제주에서는 '절'이라고 하니 파도가 우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속하며 해발고도 104미터로 해안에 위치한 탓에 비고도 그대로 같은 높이를 갖는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으로 유명한 사계리에서 올레 10코스이기도한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면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오름이다.

 오름 아래 산이수동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잘 조성된 올레길이 있다. 이 올레길이 오름을 한 바퀴 도는데, 오름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서쪽으로 들어가면 쉬 찾을 수 있다.

 오름이 이중화산체이어서 외륜과 내륜으로 구성되는데 외륜 바깥쪽은 소나무가 무성하다. 이 모습 때문에 송악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솔잎길이라는 이름이 새로 생긴 길을 따라 가면 거대한 굼부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 굼부리 안에 또 하나의 오름이 생성되어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수중에서의 화산 폭발로 외륜을 이루는 오름이 바다 속에서 생겨났고 이후 융기되어 육상으로 올라온 뒤 굼부리 안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하여 생겨난 오름이라고 한다. 흔치 않은 모습이다.
정상을 이루는 안쪽 오름은 아직 젊은 나이인지 경사도 급하고 검붉은 화산암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 오름으로 올라가는 사면에는 폭발당시에 생겨난 화산암들이 그대로 노출되어있다.

 한바탕 다리에 힘을 쓰고 정상에 서니 기묘년 마지막 날의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정상에는 특이하게도 비석이 서있는데 송악산이라고 새겨놓았고 뒷면엔 한시도 새겨놓았다.

 폭발 당시의 위력을 그대로 보여주듯 깊이 70여미터의 원뿔형 굼부리가 패였는데 아찔한 느낌을 줄 정도이다. 방목하던 소가 이곳에 빠지면 죽어서야 나왔다고 할 정도이다.

▲ 깊숙이 패인 원뿔형 굼부리

 태평양으로 향하는 바다위로 가파도가 파도에 쓸릴 듯 야트막히 누워있고 그 너머로 우리나라 최남단인 마라도가 보인다. 가파도와 마라도를 놓고 “빌린 것을 갚아도(가파도) 좋고 말아도(마라도)좋다”는 농을 떠올리며 배시시 미소를 지어본다.

▲ 가파도와 그너머로 마라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오름이기도하다. 가파도 섬 옆으로 2011년 마지막 햇살이 내려오고 있다.

 매년 봄이면 청보리 축제로 유명한 가파도인데 조선시기만 해도 소를 방목했던 무인도였다. 그런데 1839년(헌종 6년)에 영국군들이 소를 훔쳐가는 바람에 대정현감이 파직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뒤에 부임한 현감은 이 소들을 모두 본섬으로 옮겼다한다.

 서쪽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는데 알뜨르라고 불리는 곳이다. '드르'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이고 보면 알뜨르는 아래쪽에 있는 들판이라는 뜻이 된다. 지금은 비옥한 농경지인 이 알뜨르는 근현대사의 많은 아픔을 인내해야 했던 땅이기도 하다.

▲ 알뜨르 비행장. 누런색으로 길게 보이는 곳이 활주로이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활주로가 아니라 비포장 활주로이다.

 일본과 중국의 사이에 위치한 제주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파한 일제는 이곳 농지를 징발하여 비행장을 건설하게 된다. 1926년부터 시작하여 10여년의 공사 끝에 20만평 정도의 규모로 완공된 이 비행장에서 발진한 폭격기들이 상하이까지 날아가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후 전쟁이 확대되면서 규모가 80만평까지 확대되었다. 따라서 이 평야 대분이 군사기지화 되어 지금도 전투기를 숨겨두었던 격납고가 곳곳에 남아있다.

 또한 이 오름의 해안 절벽에는 수많은 인공동굴이 패여 있는데, 이것은 일제가 패망이 다가오면서 이 땅에서 결7호작전이라는 옥쇄작전을 벌이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다. 가이텐부대라고 불리는 인간어뢰를 숨겼던 동굴이다.

 몇 년 전 조선일보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그래픽 인간어뢰가 아니라 실제 인간어뢰를 준비했던 것이다. 파시즘의 광기이다.

 이후 해방이 되었는데도 이 땅은 원주인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한국동란의 발발과 함께 제1훈련소가 들어서서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을 거쳐 민족동란의 전장으로 향해야했다. 활주로는 지금도 군사보호시설로 보존되고 있다.

 이 오름은 두 개의 알오름을 거느리고 있는데 동알오름과 섯알오름이 그것이다. 섯알오름 기슭에는 일본군의 탄약고가 위치해 있었는데 패망을 하면서 탄약을 폭파시켜 버리는 바람에 큰 웅덩이가 파여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경은 예비검속자들을 이 웅덩이에 몰아넣고 학살해버리는 참극이 일어났다. 이제 세월이 흘러 이곳에는 추모시설이 세워져 찾는 이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참으로 이곳만큼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모두 모아서 간직한 땅도 드물 것이다.

 멀리 동쪽으로 보면 이 모든 아픔들을 애가 끊어지는 심정으로 지켜본 한라산이 오늘도 인자한 모습으로 앉아있고, 또한 평지돌출형의 오름이라는 산방산이 불끈 솟아있다.

▲ 굼부리 능선 너머로 산방산, 군산, 형제섬 등이 보인다.

 탑을 도는 심정으로 굼부리를 돌고 동쪽으로 하산 길을 잡았다. 내륜과 외륜사이에 자그마한 봉우리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 숫자가 아흔아홉 개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세어서 확인할 필요까지야 무에 있으랴.

 해안 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올레길 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모두 여행의 즐거움과 경관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바다위에도 관광객을 실은 유람선들이 한가롭다.

 기묘년 한해의 산행을 여기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 오름전문가 김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