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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스토리텔링 2탄 '솔동산 8경'
강민식 기자  |  kminsik@leisur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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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21  00: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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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동산 문화의 거리

서귀포시가 스토리텔링으로 서복10경에 이어 솔동산 8경을 만들었다.

솔동산 8경은 솔동산 문화의 거리에 관한 내용이다. 솔동산은 1589년 서귀진성이 만들어 지면서 426년 동안 서귀포시 역사와 문화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서귀진성에서 노인성을 바라보는 것을 서진노성(西鎭老星)이라고 하며 영주 12경 중 하나이다.

솔동산 8경은 서귀진지의 노인성 ‘무병장수’를 주 테마로 1경 서귀진성(西歸鎭城), 2경 목사고목(牧使古木), 3경 서진노성(西鎭老星), 4경 신작대로(新作大路), 5경 장수지원(長壽之園), 6경 송산고적(松山古跡), 7경 중섭휴의(仲燮休椅), 8경 백년수로(百年水路)이다.

   
 

솔동산 1경 서귀진성.
조선시대 제주의 대표적인 방어유적으로 3성 9진에 속하며 정의현 관할이었다. 1589년(선조 22년) 이옥(李沃) 목사가 서귀포로 옮겨 축성하였다. 둘레는 825척 5치이고, 높이는 12척이었다. 성문은 동과 서에 있었다. 집채는 북성안 중앙에 객사를 두고 좌우로 진사, 무기고, 사령방, 포주, 창고 등이 배치되어 있다. 당시 서귀진에는 성정군 68명, 목자와 보인(保人) 39명을 합해 약 100여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서귀진성은 조선시대 제주의 방어유적인 3성 9진의 하나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다.

   
 

솔동산 2경 목사고목.
서귀진성 터에 자리한 수령 400년이 넘은 팽나무이다. 서귀진성의 상징이자 쉼터로 자리한 팽나무는 산남의 중심지로서의 긍지를 엿볼 수 있다. 이 팽나무는 오래된 큰 나무로서 생물학적 자료로 보존 가치와 선조들의 정신생활을 엿볼 수 있는 문화사적 자료로 가치도 매우 크다.

   
 

솔동산 3경 서진노성.
장수를 빌던 세종대왕은 천문관을 서귀포로 보내 남극노인성을 보고 오라고 했다. 남극노인성을 보면 나라가 평안해지고 무병장수한다는 사실을 믿었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성을 제대로 관측할 수 있는 곳은 제주에서도 남쪽이 트여 있는 서귀포로 전해진다. 제주 선인들은 서귀진성에서 바라보는 노인성을 제주에서 빼어난 경치인 '영주 12경'의 하나로 꼽았다.

   
 

솔동산 4경 신작대로.
1915년 지금의 서귀포시 동홍동 ‘굴왓’에 있던 면사무소가 송산동으로 이전하고 경찰주재소와 우편국 등이 들어서면서 서귀포는 산남 중심지 역할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1917년 해안을 개통하는 일주도로가 개통되고, 1920년 제주도지청이 개청되었다. 이어 항만이 신설되고 일본 사이에 항로가 개설되었으며, 1930년에는 금융조합 등의 산업기반시설이 들어섰다. 이처럼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 우편국, 제주도지청, 신작로등 근대적 행정관서가 집중되었던 곳이 송산동이다. 서귀포항을 중심으로 한 송산동 일대는 일본인을 위한 경제특구이자 이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였다. 이 곳은 한때 ‘서귀포의 명동’으로 불리워 지기도 했다.

솔동산 5경 장수지원.
역사 속에서 서귀포는 유토피아와 다름없었다. 기원전 3세기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이 방사 서복에게 명하여 영주산에서 불로초를 찾아 오도록 명하였다. 서복일행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 정박하였고 천문학에 능통한 서복은 노인성(수성)에 불로장생을 염원하는 제를 지내기 위해, 노인성이 가장 잘 보이는 이 동산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을 것이라는상상에서 이 이야기를 전개했다. 서귀포에서 보이는 ‘남극노인성’은 무병장수를 비는 별자리이다. 남극노인성은 인간의 행복과 장수를 주관하는 별로 남쪽 지평선 근처에서 관찰된다. 별칭으로는 카노푸스, 남극성, 남성, 수성인 수노인이라고 부른다.

   
 

솔동산 6경 송산고적.
일제시대 서귀포항 주변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여관을 포함해 잡화점 식당, 당구장, 어구류상점, 병원 등이 있었다. 일본식 주택은 1960년대 초반만해도 즐비했으나 새마을운동 이후 대부분 사라졌다. 이 시기의 유산으로 지금도 일본식 주택이 남아 있다. 옛 솔동산 신작로를 상징하는 안거리밖거리 식당건물은 솔동산의 옛 면모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솔동산 7경 중섭휴의.
이중섭(1916-1956)은 한국전쟁 발발 후 서귀포 지역으로 피난왔다. 이 시기에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의 아이들’, ‘서귀포의 환상’ 등 대표작을 생산했다. 이중섭 이웃은 서귀포 화가 고성진이다. 고영우 화백 부친인 고성진의 집은 이중섭이 사는 곳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솔동산이었다. 솔동산은 바닷가로 가는 길목이었고 이 곳은 이중섭의 사색 장소였다.

   
 

솔동산 8경 백년수로.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조선시대 중기인 420년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저수지 흔적이 확인되었다. 목조 저수지는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끌어온 물을 저장하는 기능을 했다. 서귀진에 관한 문헌기록과 일치한다. 당시 성 안에서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정방폭포 원류인 정모시에서부터 1200m 구간 물길을 열어 관개수로를 축조하였다. 지금의 수도관 역할이다. 수로는 매우 정교하다. 수로 위로는 돌 덮개를 씌워 성안 군사들이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했다.

솔동산 8경은 송산서귀 마을회와 작가의산책길 해설사회가 만들었다.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회는 회원 2명이 이중섭거리에 있는 창작스튜디오에서 매일 오전 10시, 11시, 오후 2시, 3시에 솔동산 문화의 거리를 안내 한다. 

강민식 기자  kminsik@leisur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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