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제18대 총선을 맞은 민주당 공심위는 안희정 예비후보를 공천심사대상에서 배제했다. 공천 탈락이 아니다. 심사대상에조차 끼워주지 않았다. ‘좌희정 우광재’의 그 안희정을. 노무현 대통령이 서슴없이 “동지”라고 말하던 그 안희정을. 반발을 예상했다. 사당화, 정치 보복, 패권주의, ‘굴러온 돌이…’ 등을 동원하고 무소속 출마도 점쳤다.

뜻밖이었다. “민주주의 역사의 진보는 이상과 포부만이 아니라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과정상의 정당성에 의해 발전한다고 믿는다”며 승복했다. “저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저에게도 기회가 열리길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안희정을 ‘정치인’으로 주목하게 된 계기다. ‘물건’이라고 판단했다. “기회가 열리길 간절이 원한다”던 이 ‘물건’은 2010년 민주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충남도지사가 됐다.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8개월 연속 전국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 1위를 달리고 있다. 긍정평가율이 70%대다. 2위의 긍정평가가 56.3%인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이다. <시사저널>은 올해 10월호에서 ‘차세대 리더’ 1위로 이 정치인 안희정을 선정했다.

어린 시절 위인전을 많이 읽은 부작용으로 정치인들 책을 보지 않는다. 누가 써 준것 같은 책을 보지 않는다. 대필한 것이 분명한 연설문을 신뢰하지 않는다. <안희정의 함께, 혁명>은 처음 접하는 정치인의 책이다.

“겸손이 완성되는 것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완벽한 존재일 수 없다는, 인간 존재의 한계에 승복할 때임을 깨달았다…… 혁명에 대한 열망이 내 눈과 귀를 예민하게 단련시켰다면, 겸손에 대한 깨달음은 내 오른손과 왼손이 낯선 손들을 잡고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문장력이 상당하다. 표지를 가리고 저자명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는다면 프로 작가의 에세이로 착각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책을 잡고 있는 시간은 고통스럽지 않다.

안희정의 말은 상식에 기반을 둔다. “양심과 상식이란 무엇인가. 제 논에 물 대지 않기,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지 않기, 염치 차리기, 약한 사람 도와주기, 폭력 쓰지 않기, 도둑질 하지 않기…”라고 말한다. “주말에 가족과 장을 보는 사람이라면 물가 걱정하는 소리에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며, 지하철 타고 출퇴근을 해본 사람이 콩나물시루 같은 지옥철의 고통을 알 것이다. 자식 낳아 키워본 사람이 보육과 교육 정책에 세밀한 비판을 가할 수 있을 것이며, 월급 통장 바라보며 한 달을 버텨본 사람이 치솟는 집세와 교육비의 교통을 뼈저리게 알 것이다”이것 또한 상식이다.

안희정은 정당주의자다. 좋은 정당이 좋은 정치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정당을 하루 아침에 떴다방으로 만들어버리고, 값싼 정치 공약과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일시적 사랑을 원하는 정치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새 정치’에 대해 “시대마다 반복되어온 수사다. 다른 게 있다면 과거에는 세력이나 집단이 새 정치의 기치를 올렸다면, 현재는 특정 인물과 새 정치가 동일시되기도 한다…… 정치 혐오에 기반을 두는 안티테제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한다. 모이제스 나임이 <권력의 종말>에서 소개한 스위스의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발언 “새로운 정치 세력 대부분이 국민의 분노와 좌절에 편승해 매력적이지만 ‘극도로 단순화된’ 공약, 결국에는 기만적 공약을 내세워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정치선동 집단이라면서, 그들을 ‘극단적 단순주의 세력’이라고 불렀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다.

안희정은 의회주의자다.“거수기가 된 집권여당”을 안타까워 하고 “날 선 갈등 속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민주주의 법과 제도에 따라 결론을 이끌고 인정할 때, 다툼과 대립의 상황에서 공동체의 우애를 깨지 않고 타협을 이끌어낼 때, 더군다나 내 개인기가 아닌 우리가 약속한 민주주의의 규칙에 의해 결론을 내릴 때 나는 정치인으로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또한 여야의 적대적 공생을 비웃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보와 보수 모두 사생결단의 의지로 결투도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적대적인 경우가 더 많다”고.

재미있는 책 <은하영웅전설>에 양 웬리라는 인물이 나온다. 민주주의 신봉자라는 점에서 안희정과 닮았다. 양 웬리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가 세포분열해서 개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의지를 지닌 개인이 모여 국가를 구성하는 것인 이상, 어느 쪽이 먼저고 어느 쪽이 나중인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명한 이치”라고. 안희정은 말한다.“민주주의란 세금을 내는 주권자가 자신의 필요로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라며 “국가가 이미 존재해 있고 , 그 국가의 구성원으로 태어나서 국가에 예속되고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관계가 되어선 안된다”고. 닮지 않았는가. 안희정은 한번 더 말한다. “세금을 낼 테니 내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국가를 만들고 정부를 운영하는 것 아니겠는가”며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국가의 무능력을 질타한다. 개헌론에 가하는 일침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한번 더 강조한다.“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재생산하는 도구로써 이용하지 않도록 우리는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이다.

“국가권력과 자본권력. 이 두 개의 권력을 어떻게 민주주의 통제하에 두느냐가 인권을 증진시키는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에서 노무현(‘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했다)을 뛰어넘겠다는 다짐과 “‘능력이 달리고,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은 자리는 절대 탐하지 않겠다’ 책임지지 못할 자리에 올라 자의식으로 책임지지 못할 일들을 벌일 때 주변 사람들에게 오히려 해악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말에서는 대선 출마를 준비하는 안희정의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