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제주4‧3평화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작 정범종 작가의 <칼과 학>이 출간됐다. 1회 구소은 <검은 모래>, 2회 양영수 <불타는 섬>, 3회 장강명 <댓글부대>에 이은 네 번째 수상작이다.

이 책은 고려시대 문인과 무인 간 갈등을 배경으로 고려청자에 상감 기법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피지배계급에서 민중계급으로 이행하려는 천민들의 갈망을 그렸다. 비색 청자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상감기법을 둘러싸고, 이를 억압하려는 지배계급과 예술의 혼을 담아 평화를 기원하는 천민계급의 첨예한 대결이 세세한 문체로 살아난다.

왕의 다회를 준비하는 상서 시랑 주상우는 개경 궁궐에 들어온 그릇들을 살펴보던 중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상감청자 찻잔을 보고 당황한다. 그는 그 아름다움에 찬탄하는 한편 그것이 불러올 변화에 위협을 느끼고 칼잡이인 동생에게 상감청자를 만든 이를 찾아서 처단할 것을 지시한다. 시대를 가르는 칼과 세상을 품으려는 예술의 암투다.

제주4․3평화문학상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염무웅, 소설가 이경자, 현기영은 “격조 높은 시적 문장의 경쾌한 속도감은 고전적 소재를 극복하기에 충분하다”며 “갈등구조는 평화의 미륵세상을 불러오려는 ‘소신공양’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장면이 지닌 극적 긴장감과 주제 상징성이 심사위원 모두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 정범종

정범종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전남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새연>으로 입선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을 자유를 상징하는 ‘새 모양의 연’과 그것을 총으로 쏴 떨어뜨리는 사냥꾼을 통해 형상화했다. 2007년 희곡 <오방색 양말>이 5ㆍ18문학상 우수상에 선정됐다. 5ㆍ18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한 장소인 상무관을 찾은 한 여인이 시신에 양말을 신겨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었다.

<칼과 학>은 정범종 작가의 첫 소설이다. 고려 상감청자의 아름다움에 끌려 작품을 구상했다. 신문 사와 잡지사 생활을 이어가며 틈틈이 썼다. 청자를 찾아 간송미술관, 강진 고려청자박물관 등 전국을 돌았다. 책을 쓰고 다듬고 완성하는데 십 년이 흘렀다.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완성된 상감청자에 칼의 흔적은 없다. 무늬는 칼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작가는 상감의 의미를 사랑과 평화의 의미로 해석한다. 사람들과 질흙처럼 섞여 지내며, 경쟁 너머의 평화를 생각한다. <칼과 학>은 소설가로 첫 발을 뗀 그의 문학적 다짐일 것이다.

제주4‧3평화문학상은 4·3의 아픈 상처를 문학작품으로 승화하고 평화와 인권·화해와 상생의 가치 실현으로 도민화합과 제주의 새로운 도약을 이루고자 2012년 3월 제정됐다.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은 올해 5월 27일부터 12월 20일까지 공모를 진행했다. 당선작 발표는 내년 3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