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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살았던 오름 영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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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7.07  01: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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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읍으로 가는 길은 본래 제주목과 정의현을 연결하던 길이다. 4.3의 혼란함 속에 황폐했던 길은 동부산업도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고, 다시 이름이 번영로로 개칭되어 이제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옛적 정의현이나 제주목 관아에 소속되었던 수많은 통인들이 문서를 들고 다리품을 팔았던 길인 것이다.

 이제 ‘성읍민속마을’이라는, 관광지로 유명해진 성읍리에서 성산포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700M를 가면 왼편에 ‘영주산 가는 길’이라는 표시가 나온다.

 영주산.

 옛적에 신령이 살았다하여 영모루, 영지로 불리던 것이 변형되어 영주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칭하는 경우가 있어 겸손하게 소영주산으로 기록된 것도 보인다. 정의현청 북쪽에 우람하게 솟아 현의 주산 역할을 하였고, 또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으니 그 이름이 과하지는 않을 법하다. 또 해발은 326M에 불과하지만, 비고가 약 150M로 높고 몸체가 우람하여 현의 주산으로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 하얀 찔레꽃

 안내표지를 따라 기슭에 이르니 크지는 않지만, 차량 예닐곱 대는 충분히 세울만한 주차장도 확보가 되어있다. 철조망을 넘을 수 있게 철제계단이 놓여있어 넘어서니 파란들판에 목재로 길을 깔아놓았다. 오름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꽃내음이 맞이한다. 지천에 가득 하얀 찔레꽃이 만발하였다. 오름 가는 길에 이 찔레는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닌데, 오늘의 이 향기는 여간 감미로운게 아니다. 어릴 적 추억에 찔레 새순은 따서 벗겨 먹어본다.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 이 계절이면 자주 먹던 간식거리였다.

   
▲ 영주산을 오르는 나무계단

 푸르른 하늘과 만나는 오름 능선에 파란잔디가 더하여 곱기도 하다. 한고비를 올라 중턱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길을 나서니, 오름 능선을 따라 나무계단이 길게 놓였는데 마치 하늘로 이어지는 계단 같은 착각이 든다. 안개라도 끼어 운치를 더해준다면, 이 오름에 살았다는 신선을 찾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저승사자를 따라가는 길 같기도 하겠다. 쉬엄쉬엄 30여분을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삼각점이 박혀있고 오래된 경방초소가 맞이한다. 산불감시를 위해 세워놓은 경방초소인데 굵은 철사로 단단히도 매어놓았다. 바람 탓일 것이다. 겨울이면 칼바람이 몰아치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면의 매끄러움도 모진 바람 때문에, 나무가 자라기 힘든 여건이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말굽형 굼부리를 갖는 오름인데 전형적으로 탁 트인 모습은 아니고, 정상에서 급경사를 이루며 내려온 굼부리가 협곡과 같은 모습으로 동쪽 방향으로 트여나갔다.

 발아래 성읍민속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자주 국가를 표방하여 대외적으로 긴장된 외교관계를 유지하면서, 내부 결속을 도모하였던 고려와 달리, 조선은 아예 건국이념으로 사대주의를 천명하고 나섰다. 따라서 조선은 유교라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또 행정체계를 중앙집권화 함으로써 내부결속을 꾀하게 된다. 이를 위하여 군현을 정비하게 된다. 그에 따라 태종16년(1416년)에 산남지역에 대정현과 정의현을 두게 된다. 이로써 제주목과 더불어 삼읍체계가 만들어지고, 이 행정조직은 조선 말기까지 유지되게 된다. 제주목사 오식이 ‘산남의 백성들에게 제주읍성이 너무 멀어 억울한 일이 있어 호소하려하여도 너무 힘들다’는 요지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제주민초들에게 관아가 가서 호소할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무슨 주민등록등본을 뗄 일이 있으며, 자식 취학통지서 한 장이나마 받을 일이 있겠는가, 필요가 있다면 세금을 걷고 노동력을 동원해야할 관아가 더 필요할 것이지. 처음에는 이곳 성읍리가 아니라 지금의 성산읍 고성리에 읍성을 두었는데, 한쪽에 치우쳤다는 여론과, 왜구의 근거지가 되기 쉬운 우도와 가까워서 8년만인 1423년에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4.3항쟁 혼란 속에 중산간 마을이 모두 소개되고, 군경에 의해 불태워지게 되는데, 이곳에는 경찰지서가 있어서 참화를 면하게 된다. 그리하여 다행히도 옛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고 민속마을로 지정이 되기까지 하였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4.3의 비극은 사람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문화유산이 불타고, 마을을 지키던 아름드리나무들이 마을 재건과정에서 사라져 갔다.

   
▲ 영주산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멀리 성산일출봉이 허리에 구름을 둘러 마치 하늘에 떠있는 듯 서있다. 보통 일출하면 성산일출봉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새해 첫날이 되면 이 오름에도 수많은 인파가 새해의 소망을 안고 밀려든다. 어쩌면 바다에서 보는 단순한 일출보다, 대지에 아침햇살이 부챗살같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오름 일출이 더 장관이다. 멀리 남녘엔 매오름이 매부리만 뾰족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산 길에 나섰다. 장끼 한 마리가 목울대를 세우고 목청을 높인다. 사랑의 계절인가보다. 여기저기 게으른 철쭉들이 늦게나마 꽃을 내밀고 있다. 삼나무가 울창한 굼부리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니 군데군데 크고 작은 바위들이 박혀있는데 마치 ‘앉아서 쉬어가세요’라고 속삭이는 듯하여 잠시 쉬기로 하였다. 일행들은 마치 봄소풍이라도 나온 초등학생들같이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봄 야생화가 때를 놓치면 안 될세라 분주히 꽃을 피우고 있다. 노란 미나리아재비, 등심붓꽃 구슬 봉이 등등.

 능선을 따라 풀을 뜯는 한우들의 무리를 바라보며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행복한 산행이었고 아름다운 오름이다.

   
▲ 오름전문가 김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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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쓴글~ㅋㅋㅋ
(2011-07-08 22: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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