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절 사용하던 농사용 도구들 중에 푸는체라는 것이 있다. 표준말로 키라는 것인데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할 때 주로 쓰고, 부차적인 용도로 오줌싸개 소금 얻으러 보낼 때 씌워서 보내기도 한다.
그 외에도 골채라는 것도 있다. 주로 감자나 고구마 과일 등을 담아 나를 때 쓰는 것으로 표준말로는 삼태기라고 한다.
또 체라는 것이 있는데 둥그런 원형의 바닥에 망이 달려있어서 알곡의 잡티를 골라내는데 썼다.

 제주의 오름 중에 이 세 가지의 농기구를 이름으로 빌려 쓴 오름 들이 있다.
골체오름이라는 곳이 있고, 체오름이 있다. 또 쳇망오름이라는 곳이 두 곳 있는데, 웬일인지 망체오름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 체오름의 전경 깊고 커다란 말굽형 굼부리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 하나, 체오름을 가기로 한다.
체오름,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 키를 닮았다고 箕岳이라고 표기되기도 하고 음을 따서 體岳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실은 골체(삼태기)를 닮았다.

 해발 382m 비고117m의 말굽형 오름으로 구좌읍 송당리와 덕천리의 경계를 이루는 오름이다.
대천동 사거리에서 송당리 방면으로 가다보면 송당 목장 입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편으로 2.2Km을 가면 두 개의 오름 사이에 이르게 되고 여기서 오른편에 보이는 둥그런 오름이 체오름이다.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눈치를 채었을 터인데, 바로 지난주에 찾았던 거친오름과 같은 입구이다.
즉 왼쪽에 있는 오름은 거친오름이고 오른편의 오름은 체오름인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이 있다.
비자림로와 중산간도로가 만나는 송당 사거리에서 덕천리 방면으로 400여m를 가면 왼편으로 농로가 있고 이 농로를 따라 200여m를 가서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가도 된다.

 사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이곳으로 다닌다. 철문이 있어 조심스럽기는 하나 제지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아마도 사유지인가본데 제법 가꾸려고 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들어서자 오름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생겨났으리라 짐작되는 커다란 ‘엉’이 나타난다.
굴이라고 하기에는 깊이가 작고, 커다란 암반의 아래가 깊숙이 파인 곳을 제주에서는 ‘엉’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그 앞에는 마치 묘 앞의 상석모양으로 바위가 하나 놓였는데, 이 ‘엉’을 등지고 이 바위에 올라서서 창이라도 한마디 뽑는다면 꽤 운치가 있을법하다.

▲ 이런 곳을 '엉'이라고 부른다.

 오름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알오름 세 개를 끼고돌면 마치 거대한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습의 오름이 드러난다. 체오름이다.
오름의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길이 나있는데, 오른편 능선으로 오르기로 하였다.
잡목이 우거진 길을 따라 10분 오르면 능선에 다다르고 이 능선 길을 따라서는 편백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왼편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제주의 오름 중에 이렇듯 굼부리가 수직으로 파인 곳은 이곳뿐일 것이다.
가히 장관인 굼부리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말굽형 굼부리의 전형일 것이다.

▲ 쌍둥이 같이 보이는 두 개의 오름이 안돌오름(오른쪽)과 밧돌오름(왼쪽)이다.

 능선을 따라 돌면 정상에 다다르게 되는데, 사실 능선이 거의 같은 높이를 하고 있어서 어느 곳이 정상인지 구분이 안 되는데 그래도 삼각점이 박혀 있어서 정상임을 확인하는 정도이다.

 그래도 정상이라고 여느곳 보다는 조망이 더 좋기는 하다.
바로 앞에 매끈한 풀밭으로 된 오름이 두 개가 보이는데,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이다. 즉 안에 있는 돌오름과 밖에 있는 돌오름이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그 건너에는 거슨새미오름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갖는 오름이 바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진다.
샘이 솟아나려면 오름의 바다 방향으로 솟아나야 정상인데 한라산 방향으로 솟아나서 붙은 이름이다.

 오름에서 내려와 거대한 굼부리로 향했다.
굼부리로 들어가는 길이 마치 인간세상에서 신선의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바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어진다.
오름의 사면은 모진 바람 탓에 억새와 키 작은 잡목만이 버티고 있는데, 굼부리 안은 바람을 막아주는 덕택에 상록수림이 무성하다. 한겨울임에도 식나무가 열매들 달고 있어서 발길을 멈추게 한다.

 굼부리자체가 워낙 큰데다가 이층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굼부리를 모두 돌아보는 것도 오름 하나쯤은 탐방하는 길 정도이다. 소풍이라도 나오면 좋을 듯 바닥을 누군가 잘 정비해 놓기도 했다.

▲ 굼부리 가운데 나무 한그루

 가운데에는 잘생긴 나무 한그루가 인상 깊게 서있다. 초봄이면 복수초도 무리로 피어 그 화사함을 경쟁하는 곳인데, 아직은 때가 일렀는지 땅속에서 꿈쩍도 않고 있어 나그네를 아쉽게 한다.

 아마도 굼부리의 가장 깊은 곳, 용암이 마지막까지 분출되었을 법한 곳에는 우마용인지 식수용인지, 시멘트 구조물로 만들어진 우물이 있어, 물이 귀했던 시절의 어려운 삶을 떠올리게 한다.

 아직은 겨울의 위세가 남아 바닥에 서릿발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제 봄이 오면 이 굼부리 안이 가장먼저 환영의 인사를 건넬 것이다.
색색의 수많은 야생화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