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최대의 곶자왈을 만들어낸 도너리오름의 남서쪽에, 바로 그 곶자왈을 딛고 오름 하나가 솟아올라있다.
광활한 곶자왈 속에 숨어 고즈넉이 지내던 오름인데, 개발의 무기를 들고 밀어닥친 사람들에게 제 살의 일부도 속절없이 떼어주고 이런저런 소음도 감내해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 남소로기오름의 전경. 날씨가 부조를 해줘야하는데 연무가 끼어서 사진이 흐리다.

 또한 이 오름의 남록으로 커다란 녹차 밭이 조성되어있고, 또 우리나라 최초의 녹차 박물관이 개관되어있어서, 연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 되기도 하였다.

▲ 오름자락엔 커다란 녹차 밭이 조성되어있다.

 평화로를 따라가다가 산방산이 보일쯤 오른쪽에 원물오름이 나오는데, 여기서 평화로를 버리고 우회전하면 검문소가 있는 동광육거리에 이른다.
여기가 서부지역 중산간 교통의 요지인 곳인데, 여기에서 오설록 방면으로 3.5Km 정도를 가면 오른편에 있는 오름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녹차밭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5분여를 걸어가면 오름 탐방로 입구에 다다르고 간이 주차장도 마련되어있다.

 남송이오름. 남소로기오름이라고도 한다.
그 외에 한자로 南松岳(남송악)이라고 표기되는 경우도 있고, 곶자왈 벌판에 불끈 솟았다고 南崧岳(남숭악)이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에도 남녘남자(南)가 붙는데, 이것은 한경면 저지리에서 볼 때 남동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한자식의 표기가 어떠하던, 이 마을 촌로들은 이 오름을 남소로기오름이라고 부른다. 오름의 형상이 소로기(솔개의 제주어)를 닮았다는 것이다.
또 오름의 형세가 동쪽으로 꼬리를 끌며 끝부분이 알오름 같이 솟아올랐는데, 이곳을 따로 소로기촐리(솔개의 꼬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쪽 저지리 마을이 닭의 형상인데 비해 이 오름이 솔개의 형상이다 보니, 옛적 어르신들은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나보다.
이 오름에 기가 세지면 마을에 좋지 못한 일이 생긴다하여, 이 오름에 나무도 베고 불도 놓아 기가 승하는 것을 막은 반면, 저지오름에는 열심히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어쨌든 저지오름은 2007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 오름 표지판

 해발 339m에 139m의 비고를 갖는다. 평균 이상의 높이를 갖고 있다.
저지리와 함께 소개가 되어서 저지리에 속하는 오름으로 착각할 듯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고 안덕면 서광리에 속하는 오름이다.
지금은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와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로 시의 경계가 나뉘지만 옛적에는 모두 대정 현에 속했다.

 옛적에는 민둥산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들어서는 초입부터 소나무가 무성하게 식재되어 있고, 복분자딸기가 유독 많이 눈에 띈다. 그 사이사이에 아직은 물이 오르지 않은 두릅나무도 막대기를 박아놓은 듯 서있다.

 폐타이어를 이용하여 등산로를 정비해 놓아 덤불을 헤치는 수고는 없으나, 지난밤의 과도한 즐거움이 오늘의 산행 길을 힘들게 한다. 다 내 탓이지 뭐.
연신 물을 들이키면 20여분을 올라가니 능선에 다다르는데, 여느 오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화산석들이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서있다.

 정상에 이르면 높다랗게 전망대를 세워놓았다. 지난번에 찾았을 때만해도 산불 감시초소만 하나 있어서 그 지붕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곤 했었는데, 그새 번듯한 전망대가 생겨난 것이다.

 광활한 곶자왈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동쪽엔, 시뻘건 용암을 꾸역꾸역 토해내어 이 곶자왈을 만든 도너리오름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조용히 앉아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부메랑의 모습을 닮은 문도지오름이 곶자왈의 품에 안겨있다.
멀리 남쪽으로는 산방산의 위용이 뚜렷하고 해안선을 따라 좌우로 군산 단산 송악산이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다.

▲ 부지런한 아저씨가 심심해서 만들었단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능선을 따라 석탑을 줄지어 쌓아놓았다.
석탑이라고 하기엔 좀 작고, 마치 병사들이 이열 종대로 줄을 선 모습이다.
산불 감시하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그냥 심심해서 만들었단다.
그런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냥 심심해서 만들었다니...... 예술은 인간의 본성인 것일까.

 두 개의 분화구를 갖는 오름인데, 북쪽으로 트인 말굽형 분화구는 무성한 나무들로 인하여 분화구 전체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특이 하게도 원형 분화구는 오름의 부속품인양 옆에 딸려 있다.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왼편 측백나무 가득한 사이로 굼부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깊이가 50m에 달하니 상상이상의 크기이다. 멀리서 볼 땐 오름의 자락에 딸려있어서 몰랐는데, 이렇게 큰 분화구가 있었다니.
내려가는 계단도 만들어져 있고 분화구의 바닥엔 쉬어가라고 평상까지 준비해놓았다.
사람이 살았는지 아니면 농사를 지었는지 돌담의 흔적들도 남아있다.

▲ 원형 분화구의 바닥 모습

 어쩌면 소와 말을 방목하던 테우리(목동의 제주어)들이 바람을 막아주는 분화구 안에 임시 거처라도 만들어 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측백나무 가득한 굼부리에서 피톤치드를 가득 들이마시고 다시 올라서면, 길은 이른바 소로기촐리라는 야트막한 알오름을 끼고 목장으로 이어진다.

 곶자왈 사이로 이어지는 목장길이 아름답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아니라 천연의 잔디와 화산암이 깔린, 이 땅에서 방목이 시작된 이래 그 모습 그대로의 길이다.
예전엔 곶자왈 하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곳으로 상징되었는데,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곶자왈은 풍요로움 그 자체이다.
돌무더기 밖에 없는 이 땅이 어떻게 이런 숲을 가꾸어냈을까. 새삼 자연의 섭리가 두렵기까지 하다.

 목장 길을 따라 나오는 길에서 바라보는 오름의 모습에서 솔개의 형상이 어렴풋하다.
사실 입구 쪽에서 바라보면 둥그런 모습밖에 안보이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면 웅비하는 솔개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 오름 주변의 곶자왈지대. 그리고 그 너머 오름 군락들.

 소로기(솔개)는 저지마을 사람들에게도 미운 존재였겠지만, 내 어린 시절에도 참으로 얄미운 놈이었다.
초봄, 그러니까 지금쯤이 암탉이 병아리를 부화할 시기인데, 시골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도 이 때가 되면 노란 병아리들이 태어나곤 했다.
그러면 학교에 다녀온 나에게 임무가 주어지는데, 바로 소로기로부터 병아리를 지키는 일이다.
소로기가 하늘에 뜨면 어미닭이 날개를 벌려 병아리들을 날개 속으로 불러 모으는데 간혹 솔개가 채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기가 힘든 어린 시절, 툇마루에 앉아 병아리를 지키는 일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러다 봄볕에 잠시 졸기라도 하면 그새 병아리 한 마리가 사라지곤 했다.
작대기를 하늘로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아버지께 야단맞을 일만 남는 것이다.

 그 얄밉던 소로기도 이제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병아리는 때를 가리지 않고 사시사철 기계에서 태어나지만 언감생심 접근도 힘들게 되었다.
그보다도 6~70년대 일제 쥐잡기 행사를 수시로 하면서, 쥐의 천적이었던 소로기들도 지독한 배앓이를 끝에 많이들 사라져갔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길지 않은 삶 동안 많은 것들이 주변에서 사라져갔다. 사라져간 것들은 왜 또 소중한 것들만 사라져 가는지......

▲ 오름전문가 김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