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초등학교-말미오름-알오름-종달리마을회관-소금밭-성산갑문-광치기해변(총거리 15킬로미터 / 5-6시간 소요)

▲ 쪽빛 바다 위로 궁전처럼 솟아오른 일출봉을 배경으로 광치기해변을 걸어가는 길은 올레1코스의 백미다.

 제주 올레길이 만들어졌던 2007년, 처음으로 코스가 열렸던 곳은 제주에서 제일 먼저 해를 맞는다는 시흥과 성산포. 해 돋는 언덕 일출봉은 올레길이 생겨나기 전부터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곳이다. 그러나 올렛길은 단순히 일출봉을 둘러보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먼발치에서 일출봉을 바라보고 쪽빛 바다 넘실대는 우도와 성산 일대의 광활한 들판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야말로 진정한 제주의 길이다.

 올렛길의 들머리는 말미오름 자락의 시흥초등학교. 낮은 돌담이 길을 안내하듯 이어지는 말미오름 들머리는 정겨운 시골길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주말마다 한라산과 제주의 오름, 그리고 최근 열풍이 불고 있는 올렛길을 찾아가는 '한라산을 사랑하는 사람' 회원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오름으로 들어선다.

▲ 서설이 곱게 내려앉은 광치기해변의 풍경은 1년에 한두 차례 보기 힘든 찰나의 풍광이다.

 말(馬) 머리와 흡사해서 두산봉(斗山峰)이라고도 불리는 말미오름에서는 인근의 지미봉과 우도, 식산봉 그리고 수평선에 불쑥 솟아오른 바위산 일출봉이 한 눈에 내려다뵈는 절경을 지니고 있다. 말미오름은 일출봉으로 솟아오르는 일출 장면을 담기 위해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말미오름 자락의 층리가 발달된 벼랑은 이 오름이 일출봉이나 송악산, 산방산처럼 한라산과 내륙의 오름이 형성되기 전 바다 속에서 분출이 이루어진 후 다시 솟아올랐음을 보여주는 이중화산의 귀중한 본보기다.

▲ 일출봉과 우도가 수평선에 자막처럼 펼쳐지는 제주의 바다 풍경은 계절마다 색다른 풍광과 색감으로 지나는 여행자의 향수를 자극한다.

 낮은 소나무 한 그루가 알오름 가는 길의 이정표처럼 서 있는 구릉을 오른다. 성산포에서 불어온 해풍이 오름 자락을 휘감고 유유히 흘러가는 조각구름이 하늘에 자막처럼 흐른다. 윤기를 잃어버린 초원이 지닌 갈매빛 들판으로 풋풋한 풋풋한 흙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이십여 분 올랐을까. 서서히 고도를 높여갈수록 바다 위에 성채처럼 솟아 있는 일출봉이 덩달아 부풀어 오르는 듯싶다. 땅 끝에 도도록이 솟아오른 지미봉과 소처럼 드러누운 우도가 푸른 바다의 수평선에 하늘금을 그려낸다. 오름 정상에서 맞는 시원한 풍경과 바람은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 기진했던 세포들을 깨운다.

 무덤자리가 있던 알오름 정상엔 표지석 마냥 두고 간 비석이 흙 속에 박혀 있다. 한사모의 산행 길라잡이인 김정조(48세)씨의 '보통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 본래의 비석은 무덤 있던 자리에 묻어두고 새로 이장하는 곳에 다시 새로운 비석을 세운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긴 조상 모시기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 어찌 조상의 채취를 함부로 버리고 가겠는가. 오래되어 마모되고 색마저 바랜 비석도 심심찮게 지나는 올레꾼들을 맞아서 덜 외로울 듯싶다.

 알오름 정상에서 종달리로 내려서는 구릉엔 사스레피나무로 둘러싸인 오래된 무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지런한 돌담 안 양쪽엔 동자석 한 쌍이 비석과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서 있다. 오래된 유택인 듯싶어 비석을 읽는 데 낯익다. 필자와 같은 군위(軍威) 오씨(吳氏) 조상이다. 군위 오씨의 입도조묘가 성산읍 고성에 있으니 이 유택도 입도조와 가까운 자손인 것이다. 조상님 묘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목례를 올리고 종종걸음으로 일행을 따라나선다. 알오름엔 어느 새 한 무리의 올레꾼들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수려한 풍광에 너나없이 수런수런하다.

▲ 말미오름에서 종달리로 이어지는 목장길에서는 제주 동부의 들판이 아늑하게 펼쳐진다.

 올레길은 말미오름 안에 솟아오른 알오름을 지나 종달리 마을길과 해안으로 접어든다. 당근농사와 어업을 겸한 한적한 마을 종달리에도 곳곳에 농촌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을 성싶은 커피숍과 펜션, 우아한 건물이 식당이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있다. 올렛길이 들어서면서 관광지만 흘기고 지나던 여행자들이 시나브로 한적한 농촌마을로 들어서고 맞추어 여행자들의 구미에 맞는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이다. 기실 농사짓고 고기 잡는 어부들에게 한가하게 걸어가는 여행자들의 여유와 낭만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었던가. 그러나 지금은 여행자와 농부들이 따스한 미소를 나누고 도회지와 농촌이 한결 가까워졌으니 올렛길이야말로 희망의 길이요 떠나온 사람과 머무는 이들의 교감하는 공정여행의 마당이 아닐 수 없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시흥(始興)은 제주의 첫마을을, 종달(終達)은 마지막 마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말미오름은 두 마을의 경계선에 있는데, 올레1코스가 바로 제주의 첫마을과 끝마을을 잇는 셈이다. 종달리로 들어서면서 해안가에 우람한 버티어선 지미봉을 만난다. 구제역 여파로 말미오름을 지나친 아쉬움에 지미봉(地尾峰)으로 일행들은 발길을 옮긴다. 바다에 허리를 담그고 솟아오른 지미봉은 한자풀이 그대로 '땅끝'이라 불린다. 조선시대 제주목의 동쪽의 가장자리가 바로 지미봉 땅끝이었다. 그렇다면 머리는 어디였을까. 바로 제주 서쪽 해안의 끝인 한경면의 두모리, 섬의 머리라는 뜻이다.

▲ 제주 신화 속 설문대할망이 밤새 기웠나 싶게 조각조각 깁은 것 같은 조막땅들이 종달마을의 지붕들처럼 가지런하다.

 마을공동묘지가 있는 지미봉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직선으로 길이 나 있다. 해발고도만 150여 미터. 한달음에 걷기에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어서 두 어 군데 벤치가 놓여 있다. 돌아서 보는 경치 또한 장관이다. 제주 신화 속 설문대할망이 밤새 기웠나 싶게 조각조각 깁은 것 같은 조막땅들이 종달마을의 지붕들처럼 가지런하다. 너머로는 잠시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 잠수함같은 우도와 성산 일출봉의 성채 같은 봉우리가 수평선을 수놓는다. 봉수대였던 지미봉에서는 종달리 포구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뵌다. 길게 뻗어나간 모래밭은 오래된 소금밭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어도 제주의 소금 생산량은 극히 적었다.

▲ 제주를 지나는 철새들의 낙원

 제주에서는 선조 6년(1573년) 제주목사 강려(姜侶)에 의해 처음으로 소금생산이 시작되었다. 당시 강목사가 남긴 기록을 살펴보면 ‘제주에서는 서해와 같이 전염(田鹽)을 얻고자 하나 물을 떠다가 갈아도 소금이 없고 동해와 같이 해염(海鹽)을 얻고자 하나 물이 싱거워서 공은 백배 들고 얻는 바는 매우 적다’고 제주에서 소금생산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해서 제주에서는 구엄리처럼 바위에서 소금을 만들기도 하고 종달리처럼 모래밭에서 소금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생산량은 극히 적어 대부분의 소금은 육지에서 들여와야만 했다. 소금밭이었던 종달리 인근의 해안가에는 이제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제주를 지나는 철새들의 낙원이 되었다. 종달리 인근의 창흥동 저수지를 비롯한 종달리 연안습지의 갈대밭은 해마다 청둥우리는 물론 희귀 철새인 저어새와 황새들이 찾아 겨울을 난다.

▲ 갑문교 다리에서 만나는 여명 속의 일출봉은 새벽잠을 물리친 이들에게 내려지는 하늘의 축복이다.

 종달리에서 성산포로 이어지는 해안은 어느 계절에 걸어도 좋은 길이다. 일출봉과 우도가 맞닿아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에 걷는 이의 마음까지 여유로워진다. 성산리로 이어지는 갑문다리 덕분에 해안선을 빙 둘지 않고 올렛길은 곧바로 일출봉은 이어진다. 갑문다리 일대의 모래밭은 여름철 조개잡이 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썰물 때 모래밭에서 트위스트 춤을 추노라면 발바닥에서 꼬물꼬물 조개들이 덩달아 춤을 춘다. 한 여름 썰물이 나면 드러난 모래뻘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면서 조개 잡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 일출봉이 바라보이는 오정개해안가의 이생진 시비.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널리 알려진 이생진 시인은 이곳을 자신의 시심에 혼불을 밝히는 영혼의 뼈라 부른다.

 2009년에는 성산포 시인으로 알려진 이생진의 시비(詩碑)가 들어선 일출봉은 제주 관광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진 곳. 해마다 1월 1일 일출제가 열릴 때는 전국에서 몰려든 수만의 인파로 넘실댄다. 시비가 있는 곳은 성산 일출봉 북쪽 해변의 '오정개' 해안의 잔디밭이다. 푸른 파도가 일출봉 바위에 부서지고 넘실대는 해안 단애 위 초원에 자리 잡은 시비들은 바다의 풍광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땅에 납작 엎드려 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집의 표제이자 섬을 노래하는 시인 자신의 영혼의 뼈라는 성산포 바닷가, 그 해안을 거닐며 시인은 노래했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 나는 내 말만 하고 / 바다는 제 말만 하며 / 술은 내가 마시는데 / 취하기는 바다가 취하고 /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 '술에 취한 바다' 전문

 시인은 해마다 일출제가 열리는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와 첫해를 맞고 시낭송을 한다. 시비공원에는 팔순을 넘기고도 여전히 섬 소년 같은 동심을 간직한 이생진 시인의 노래 19편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수평선에 나지막이 솟아오른 솟대 모양의 조각품 허리엔 우체통 하나 매달려 있다. 이곳을 지나는 이들이 써낸 시(詩)는 심사를 거쳐 일출제 기간에 낭송된다니 올렛길이 낳은 새로운 제주의 풍경화다.

 올렛길은 일출봉 입구에 수마포 해안을 거쳐 광치기해변으로 이어진다. 암갈색의 모래밭과 에메랄드 빛으로 넘실대는 바다에 취해 걷노라면 어느 새 성산포 시인이 된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읖조리는.

▲ 올레1코스

 ※교통/정보
네비게이션 정보 / 시흥초등학교
제주와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회선 일주도로(성산 경유) 시외버스를 타고 시흥리에서 내리면 된다.

 ※제주올레 패스포트 스탬프 확인 장소
시흥리안내소 / 금영휴게소 / 광치기 해산촌

 ※먹거리
시흥해녀의 집(064-782-9230)
오조리 해녀의 집(064-784-0893)
백기해녀의집(064-782-0673)
광치기 해산물촌/1코스 종점

 ※잘 곳
 강태여 할망집 - 010-7755-2938 시흥리 1056
 오신생 할망집 - 016- 9838-4773 시흥리 782
 강병희 이장집 - 011-691-3278 시흥리 71-1
 쏠레민박 - 011-692-1438 성산리
 초롱민박 - 011-691-4580/784-1668
 라까사인팬션 - 782-0399 시흥리
 블루씨팬션 - 784-5266 시흥리2-11
 휘닉스아일랜드 - 731-7000~5 고성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