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모습을 흔히 감자를 닮았다고 한다. 지도를 놓고 보면 동서로 길게 생긴 타원형으로 감자나 고구마를 닮기도 했다.
이렇게 감자같이 생긴 섬에도 시작과 끝이 있어서 지금의 한경면 두모리를 머리에 해당한다고 하고, 구좌읍 종달리를 이 섬의 끝에 해당한다고 했다. 아마도 과거 삼읍 체제에서 제주목의 시작과 끝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제주의 땅 끝이라는 지미봉을 찾아보기로 한다.

▲ 말미오름에서 바라본 지미봉. 박무가 낀 날씨 탓에 선명하지 못하다.

 구좌읍 종달리 입구에서 일주도로를 버리고 해안도로로 들어서서 1Km정도를 가면 왼편으로 농로가 나오는데, 이 농로를 따라 200여M를 가면 차 몇 대 세울 정도의 주차공간과 함께 지미봉이라는 오름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지미봉(地尾峰)
글자그대로 땅끝오름라는 뜻이다.
종달리라는 마을 명칭이 글자대로 해석하면 '끝에 다다랐다'라는 뜻이니 이래저래 이 섬의 끝에 위치한 오름이다.
오름의 앞쪽이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왔는데 그래서 종달반도라는 표기도 볼 수 있다.
해발고도 166M, 비고는 바닷가에 위치한 오름이다 보니 거의 해발과 같은 160m 정도의 말굽형의 굼부리를 갖는 오름이다.
그러나 말이 말굽형이지 굼부리가 넓게 퍼진 오름이 아니라 가파르게 솟아오른 오름이다.

▲ 요런 예쁜 의자를 마련해 놓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전에 없던 예쁜 간의 의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곤 이내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다른 오름들과 달리 거리를 표시해 놓았다.
정상까지 400m, 일반적인 등산로에서 400m는 사실 얼마 안 되는 거리이지만 오름에서는 다르다.
400m 거리의 계단을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숨에 올라가기에는 당췌 벅찬 오름 이어서 중간 중간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뭐 꼭 힘들지 않아도 쉬엄쉬엄 주변 경관도 즐기면서 가라는 배려일 수도 있다.

▲ 염전 터. 그리고 멀리 성산 일출봉

 중턱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내려다보니 마을 앞에서 바닷가 방향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있다.
예전에 유명한 염전이었던 곳이다.

 "가장 우스운 것은 이 땅이 큰 바다로 둘러 쌓였으면서도 소금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해와 같이 전염을 얻고자 하나 물을 떠다 갈아도 소금이 없고, 동해와 같이 해염을 얻고자 하나 물이 싱거워서 공은 백배로 들고 얻는 바는 매우 적다"
- 김정(金凈) 제주풍토록 (濟州風土錄) 1521년 -

 이렇듯 제주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지만 소금이 매우 귀한 곳이었다.
그나마 지금의 애월읍 신엄리, 대정읍 일과리 그리고 이곳 종달리등이 소금을 생산하던 곳이다.
소금을 만드는 일 역시 서해안의 염전과는 달랐다.
서해안의 경우 개펄이어서 바닷물을 끌어다 말리면 되는 일이었다. 소금에 뻘이 섞인 정도야 색이 검을 뿐 먹는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금에 돌이나 모래가 섞여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이중의 과정을 거치고 또 마지막에는 불을 때서 소금을 얻어야 했다.
소금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곳에 전해지는 노동요에는, 어린 처자들이 얼른 시집을 가서 이 고생을 면했으면 하는 내용이 들어있을 정도였다.
1900년도에 들어서면서 육지에서 증기선이 다니기 시작하고 육지부의 소금이 들어오면서 이곳의 소금밭은 쇠락하게 된다.
그 후 이재수의 난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되어 2년여의 조사를 받고 방면된, 전 대정군수 채구석이란 분이 이곳을 개간하여 논으로 바꾸려고 했었는데 방둑이 무너지면서 실패하였다 한다.
채구석, 대정군수를 지내면서 민란 당시 양측의 희생을 막고자 노력했던 분인데 말년 운세는 별로 안 좋았나 보다.

▲ 올라가는 계단 틈에 제비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정상에 다다르니 경방초소가 하나 서있고 봉수대 터가 뚜렷하다.
조선시대 스물다섯개의 봉수대중 하나인 지미봉수로 북서로는 둔지봉의 왕가봉수와 남동으로는 성산봉수와 교신하였다고 한다.
봉수대 터 안에 삼각점이 박혀 있고 봉수대 주변으로 목책을 둘러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발아래 고즈넉한 시골마을 종달리.
전하는 말에 따르면 원래는 이곳이 아니라 여기에서 한라산 쪽, 윤드리오름 기슭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려 때 송나라의 지관인 호종단이 제주에 와서 수맥을 끊고 다닐 때, 그곳 마을의 수맥을 끊어버려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또한 원래 마을이 있던 곳의 물이 나오던 자리를 지금도 ‘물징거’라고 부른다. 즉 샘이 있던 증거라는 뜻이다.

▲ 섬 속의 섬, 우도

 바다 건너엔 소가 누운 형상이라는 우도가 소리쳐 부르면 대답할 만큼 가까이 있다.
섬 속의 섬으로 각광받는 관광지인데 가장 가까이에서 섬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 또한 이 오름이다.

 오름의 주변으로는 '종달 하도 조수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해마다 철이 되면 저어새 도요새 등의 철새들이 날아들어 겨울을 보내곤 한다.
또한 철새들이 날아드는 철이면 커다란 망원렌즈와 삼각대를 짊어진 사람들도 같이 북적거린다.

 남서쪽에는 말미오름이 자리하는데, 이중 화산체의 오름이다 보니 그 모습이 마치 멕시칸들의 주로 쓰고 다니는 모자를 닮았다.
이 말미오름을 거처 지미봉의 아랫자락을 지나 종달리 해안선을 따라 성산일출봉쪽으로 가는 길이 올레 1코스에 해당하는데 1코스라는 명성답게 수많은 올레꾼들이 오늘도 각자의 감상을 안고 걷고 있다.

▲ 오름전문가 김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