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읍이나 한림읍 지경에서 한라산 쪽으로 눈을 돌리면 중턱에 두 개의 커다란 오름이 보이는데, 두 오름의 모습이 마치 삐져서 고개를 외로 돌린 듯, 서로 딴 곳을 바라보고 있다.
왼편, 조금 더 크게 보이는 오름이 노꼬메오름이고, 오른편엔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오름이 바리메오름이다.

▲ 바리메오름

 바리메오름
노꼬메오름과 더불어 애월읍을 대표하는 오름이다.
오름의 모습이 바리떼(스님들이 쓰는 나무 밥 그릇)를 엎어놓은 모습이라고 붙여진 이름인데, 그 외에도 뜻 그대로 鉢山(바리떼鉢 뫼山)이라고 표기되기도 한다.
또 발이오름 또는 발이악이라고 쓰이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와전에 의한 잘못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애월읍 어음리에 속하는 오름인데, 해발 763m 비고는 213m로 제법 높은 오름에 속한다.
전형적인 원형 굼부리를 갖는 오름이다.

▲ 표지석

 시원하게 뚫린 평화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보면 제주시 산록도로와 교차하는 입체교차로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어승생 방면으로 1.2Km를 가면 오른쪽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만나는데, 이 길을 따라 2Km정도를 가면 오름표지석과 함께 커다란 주차장과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십 수 년 전, 필자가 오름을 다니던 초기에도 이 오름은 찾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탓에 등산로가 제법 번듯하게 나 있었다.
지금은 등산로도 잘 정비되었을 뿐 아니라 웬만한 도립공원 입구만큼이나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햇살은 완연한 봄이어서 따뜻한데, 오름을 뒤덮은 무성한 자연림은 아직도 겨울잠에 빠져있다.
처음부터 나무계단으로 시작되는 등산로가 만만치 않은 경사를 예고한다. 아니나 다를까, 200여 미터의 비고 대부분이 급경사로 이어진다.

▲ 분홍노루귀.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잎이 노루귀의 잎사귀인데 이 모습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힘든 내색을 하기도 그렇고 해서 바닥에 형형색색 피어있는 야생화를 감상한다는 빌미로 쉬엄쉬엄.
유난히도 흰색의 남산제비꽃이 많이 피어있다. 해발이 높은 탓인지 좀 늦은 시기임에도 새끼노루귀 또한 드문드문 얼굴을 내밀고 있다. 또 무리를 지어 하얀 꽃을 피운 녀석들은 개별꽃이다.
이렇게 쉬엄쉬엄 20여분을 올라 능선 길에 다다랐다.
능선 길은 굼부리를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나 있는데, 정상부터 가고 싶은 것이 누구나의 심정인 법, 왼편으로 길을 잡았다.
무성한 자연림 아래로는 지대가 높음을 알려주는 듯 조릿대가 무성하다.
나무들의 키가 작아지면서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에는 나무의자와 함께 주변의 모습을 설명해 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오르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커다란 산불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만큼 주변을 둘러보는 조망권이 넓다는 반증일 것이다.
멀리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동쪽으로는 제주시너머까지 제주도의 1/3정도를 조망할 수 있는 오름인 것이다.

▲ 굼부리 모습. 비가 많이 오면 바닥 하얀 부분에 잠시 물이 고인다.그 날을 고대하며 물풀들이 누워있다. 그리고 점점으로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들이다. 무슨 소원들이 그리 많은 지...

 능선 길을 따라 터널 같은 숲속을 빠져나오니 웅장한 굼부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름의 모습이 바리떼를 엎어놓은 모습이라면 굼부리의 모습은 영락없이 바리떼를 반듯이 놓은 모습이다.
이래저래 바리메라는 이름이 실감이 간다.
깊이가 80여m에 달하는 커다란 분화구이다.
물이 고이는 산정호수로 분류되지는 않으나 비가 많이 내리면 잠시 고이기도 한다.
그래서 인지 가장 아래 바닥에는 물풀들이 누워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또 그 소원을 대신 빌어주려는 듯, 누군가 돌탑들을 쌓아놓았다.
정상과 반대되는 동쪽의 능선에 산불 감시초소가 서있고 또 하나의 쉼터를 마련하여 놓았다.
정상과 달리 이곳은 오름의 동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제주시가 한눈에 보이고 가까이에는 노꼬메오름이 위용을 자랑한다.

▲ 동쪽 능선에 마련된 또 하나의 쉼터. 뒤로 보이는 오름이 노꼬메오름이다.

 바로 옆에는 이 오름과 연이어 조근바리메(작은바리메)오름이 이어지는데, 그 이름이 안쓰럽다.
비고가 126m에 달하고 둘레가 3Km이 넘는 커다란 오름인데도 불구하고 제 나름의 이름을 갖지 못한 슬픈 오름이다.
잘난 형님 탓에 이름으로 안 부르고 꼭 누구동생으로 불리는 그런 경우인데, 당사자로서는 참 섭섭할 노릇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번에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함께 찾아볼 수 있도록 함께 정비해 놓았다.
바리메오름이 정상에서의 전망이 좋은 오름이라면 조근바리메는 숲이 아름다운 오름이다.
특히 이 계절에는 바닥이 온통 꽃밭을 이루어 오히려 더 아름다움을 뽐내는 오름이다.
형제 같은 두 개의 오름을 함께 둘러보는 여정이 이 오름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 될 것이다.

▲ 상산나무 새싹. 운향나무과에 속하는 관목으로 지금쯤 새싹이 날 때 꽃도 아닌 것이 꽃보다 더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봄에 오름에서 나는 향이 대부분 이 녀석이 향내이다. 내 뇌리 속에 각인된 봄 향기는 이 녀석의 향기이다.

 봄은 땅에서 위로 올라가는가 보다.
지면과 가까운 곳에는 봄이 완연함을 너머 흐드러졌는데, 키가 큰 나무들은 아직도 겨울이다.
중간 크기의 관목인 상산나무만 이제 잠에서 깬 듯 새싹을 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