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스럽게 뻗은 평화로 달리다가 경마장 부근에서 한라산 쪽으로 눈을 돌리면, 정삼각형으로 솟아오른 오름 하나가 시야를 압도한다.
이곳에서 보이는 모습이 붓끝과도 같다고 하여 필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 북쪽에서 바라본 노꼬메오름. 이 모습에서 필봉이라는 별칭이 유래한다.

 동부지역 오름의 대표라면 아마도 다랑쉬를 꼽을 터인데, 그와 비견되게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오름이라면 바로 이 오름 노꼬메오름일 것이다.
이웃에 하나의 오름같이 이어진 족은노꼬메오름이 있어서 큰오름 족은오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노꼬메오름

 이름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엇갈린다.
수월이와 녹고의 전설이 얽힌 노꼬물오름과 이름이 비슷해서 연관하는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鹿古岳, 鹿高岳, 鹿狗岳 등의 표기로 인하여 사슴이 내려와 살았음에 유래한다는 설, 그리고 사슴과 개에 비유한 풍수지리형국 설 등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또한 高古山, 高山 등의 표기가 있고 보면 사슴이니 개니 하는 것은 이두식 표현에 대한 억지해석의 측면이 큰 듯하다.

 순우리말의 음만 차용하여 이두식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이리저리 해석해봐야 머리만 아플 뿐이고, 여기 가장 간단명료하면서 정확한 해석이 있다.
높고높은오름. 놉고메.

▲ 서쪽 입구에서 바라본 노꼬메오름 전경

 애월읍 소길리와 유수암리에 걸친 오름으로 해발고도가 833m에 이른다.
해발이 높다보니 이 오름까지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인 목장이 있고, 이 오름을 지나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림 지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오름은 선계의 초입에 수문장으로 버티고 선 오름인 것이다.

 평화로를 따라가다가 제주시 산록도로와 만나는 어음교차로에서 평화로를 버리고 산록도로로 들어서서 어승생 방면으로 2.2Km를 가면 오른편에 소길리 공동목장이라는 푯말과 오름 표지석이 함께 서있다.
여기에서 시멘트로 포장된 목장 길을 600m 정도 올라가면 잘 정비된 주차장을 만나게 된다.

 워낙 유명한 오름이고 찾는 이들이 많다보니 여러 가지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여기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찾는 이들을 압도하며 육중한 체구를 드러내는 오름이 노꼬메 오름이다.
평화로에서 바라보는 모습과는 달리 말굽형 굼부리를 갖는 오름인데 이 말굽형 굼부리에서 토해낸 용암이 이 일대 애월곶자왈을 만들기도 했다. 한번쯤 시뻘건 용암을 토해내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등산로 입구 목장, 어미 말과 망아지가 한가롭다.

 이제 가야할 길은 비고 234m, 웬만한 오름 두 번 오르는 높이에 해당한다.
초입은 목장 길을 따라 이어지는데 조랑말들이 평화롭게 풍성한 대지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이내 목장길이 끝나면서 숲길이 이어진다. 이 호젓한 길을 숲 향기와 함께 걷는데, 길이 오른편으로 돌아서면서 이내 오르막이 시작된다.
숲의 식생도 어느새 자연림으로 바뀌었고 키 작은 조릿대도 무성하여 해발 고도를 실감케 해준다.

 훼손을 염려했음인지 아니면 산행의 편의를 위함인지 경사마다 돌계단을 죽 만들어 놓았다.
중간 중간 탐방객을 위한 안내판도 설치하여 놓았는데, 공부한다는 핑계로 지친 몸을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원래의 의도야 어떻든 가뿐 숨을 몰아쉬는 나에겐 고마운 일이다.
두어군데 쉼터도 그냥 지나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어김없이 주저앉아 목을 축이는데,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새들이 지저귐이 난분분하다. 저마다 사랑의 세레나데이겠지.

 쉬고 걷기를 사십 여분, 능선에 올라섰다. 이제 ‘고생 끝 행복시작’ 이라는 말이 실감이 간다.
멀고 높게만 보이던 한라산이 가까이 나부죽하고 울창한 산림은 마치 녹색의 이불을 깔아놓은 듯하다. 뛰어들면 폭신하게 안길 수 있을 듯이.

▲ 한라산의 굴욕?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나부죽한 모습이다.

 능선 길의 왼편은 굼부리로 떨어져 내리는 급경사이고, 오른편은 오름의 사면을 이루는 급경사이다. 양 옆으로 급경사를 끼고 능선 길을 걷고 있으려니 마치 하늘 길을 걷는 느낌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능선길이다. 겨울이 되면 한라산의 설경을 담으려는 사진 마니아들이 카메라를 메고 많이들 찾아오기도 하고 가을이면 은색 억새의 물결이 뒤덮는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마침 반갑지 않은 감기손님이 찾아와서 고생 중인데, 중앙일간지 기자가 전화가 왔다.
억새가 아름다운 오름을 안내해줄 수 없냐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인지라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으로 안내를 했다.
억새의 향연에 정신 줄을 놓은 듯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더니, 아픈 몸을 옹크리고 앉아있는 내 등 뒤로 날리는 비수 같은 한마디.
“자 이제 해가 바다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립시다. 일몰이 아주 환상이겠는데요” 나 졸도하는 줄 알았다.

 잠시 추억하는 사이에 정상에 다다랐다. 바닥에 커다란 널빤지를 깔아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정상임을 표시하는 표지석을 세워놓았는데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고 애처롭다.
제주도의 서북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으로 조천에서 서로 안덕면까지. 서쪽 이웃에는 이 오름과 쌍벽을 이루는 바리메오름이 자존심을 드러내듯 불끈 솟았고, 남녘 한라산의 수림 속에는 한대오름이 그 이름만큼이나 크고 넉넉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 그 못미처에는 나무이불을 뒤집어 쓴 자그마한 오름이 수줍게 솟았는데 안천이오름이다.
옛날 김안천이라는 효자의 이야기가 얽힌 오름이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족은노꼬메가 이 오름과 잇대어 이어진다. 이름이 족은노꼬메이지 124m의 결코 낮지 않은 비고와 커다란 몸체를 갖는 오름이다. 이웃을 잘못만나서 제 이름을 갖지 못한 슬픈 경우일 뿐이다.

▲ 족은노꼬메오름

 시에서 새로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큰노꼬메와 족은노꼬메 그리고 궷물오름까지 이어서 돌아볼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았다.
정상 조금 못미처에 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가면 족은노꼬메로 이어지고, 다시 궷물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이니 이왕 나선 길, 함께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해가 뉘엿해지는 저물녘, 떨어지는 마지막 햇살이 오름과 한라산으로 부챗살처럼 퍼지는 아름다운 모습 또한, 이 오름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제 다시 아쉬운 발길을 돌려 이웃 오름으로 향한다.

▲ 오름전문가 김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