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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선인동 마을을 지나면, 길 양옆으로 두 개의 오름이 버티고 섰다.
관문과도 같은 모습인 이곳을 지나면 수많은 오름들이 밀집해있는 구좌읍 지역으로 들어서는 까닭에, 이 두 개의 오름을 일컬어 흔히 오름 왕국의 수문장이라고 부른다.
왼편에 파도가 일 듯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오름이 제주자연문화유산으로 유명한 서거믄이오름(검은오름)이고, 오른편에 서있는 오름이 부대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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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대오름 전경, 여기에서 보면 부대오름과 검은오름이 이어진 하나의 오름으로 보인다. |
전형적인 말굽형 굼부리를 갖는 오름인데, 이 굼부리 안에 일제강점기 일본군들이 주둔했던 일이 있었다.
그런 연유로 해서 부대오름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고 또 일부 간행물에는 아예 部隊岳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까지 있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일본이 패망을 앞두고 제주에서의 전원 옥쇄를 준비했던 결7호 작전 당시, 제주에 주둔했던 일본군이 무려 76,000여명 가량 되었다.
따라서 이 오름에만 주둔한 것이 아니라 제주도의 거의 모든 오름에 병력이 배치되었고 또 생채기를 남겼다. 그러므로 이 오름에만 따로 部隊라는 이름이 붙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일제강점기 이전 옛 문헌에도 富大岳, 浮大岳, 夫大岳 등으로 쓰인 것으로 보아, 예전부터 순 우리말로 부대오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한자는 단순히 소리 나는 대로 음만 빌려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오름표지석에 쓰인 것과 같이 ".... 부대의 뜻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부대는 화전 또는 개간지라는 뜻을 가진, 평안도지방의 말로 부대기 또는 부대알의 준말이라는 설이 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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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오름길에서 자주만나는 산수국이다. 가운데 자세히 보면 아기별 모양으로 조그맣게 피어났거나, 또는 만두 모양으로 생겨서 개화를 준비하는 녀석들이 진짜 꽃이고, 주변에 커다랗게 피어난 것은 가짜 꽃이다. 꽃이 너무 작아서 사랑의 메신저인 벌이나 나비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까닭에 이런 편법을 동원했다. 일종의 화장빨이라고나 할까. |
부대오름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오름으로 해발 469m, 비고는 110m 정도이다.
전형적인 U자형의 분화구를 갖는 오름인데 능선의 곡선이 말굽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무성한 나무가 없고 매끄러운 풀밭이라면 더욱 아름다웠을 오름이다.
번영로를 따라 선흘2리인 선인동 마을을 지나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왼편으로 검은오름을 안내하는 표지판들이 번듯한데, 무시하고 오른편으로 돌아 300여 미터를 가면 왼편에 목장길이 나오고 오름 기슭에 닿는다.
보통 말굽형 굼부리를 갖는 오름의 경우 등산로가 굼부리 안쪽에서 시작되는데, 이 오름은 굼부리 바깥쪽에서 능선으로 올라 다시 바깥쪽으로 나오도록 되어있다.
십여 년 전 길도 모른 체 굼부리 안쪽에서 능선으로 올랐다가 가시덤불에서 헤매다 쫒겨나온 경험이 있다.
오름 전체가 정글 같은 숲으로 싸였는데 굼부리 내부는 잡목과 가시덤불이 엉켜있고 외부는 식재된 삼나무가 가득하다.
햇살이 따가운 날인데 오름 바깥쪽 기슭으로 들어서니 삼나무가 훌륭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또 이 삼나무를 관리하기위한 작은 임도가 훌륭한 등산로의 역할을 해준다.
이 임도를 따라 삼나무가 주는 피톤치드 향을 음미하며 걷다가 능선으로 올라서니, 언제 만들어졌는지 예전에 없던 잘 정비된 등산로가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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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름으로 들어서는 길. |
길 건너의 검은오름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고 또 편의시설이 가득한데, 한 치 건너 이 오름은 그동안 소외받고 외로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부자체면치레로 인심 좀 썼는지, 찾는 이가 별로 많지 않은 오름임에도 등산로만큼은 제대로 만들어 놓았다.
정상부로 다가서서도 식나무 생달나무 동백나무 등이 가득해서 조망됨은 없고, 군데군데 나무사이로 바깥세상이 감질나게 보이 뿐이다. 또한 정상부가 완만해서 어디가 정상인지도 잘 분간도 안 된다.
여름으로 다가서는 햇살 뜨거운 날, 외려 감사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일지 모른다.
잘 분간이 안 될 뿐, 이 오름 반경 500m 이내에 여러 개의 오름이 버티고 있다.
초지 하나를 건너면 동남쪽으로 새몰메가 거의 붙어있다시피 하고, 동북쪽으로 검은오름 역시 길이 나지 않았다면 오름 능선이 서로 이어진다.
또 서녘의 길 하나를 건너면 삼태기를 닮았다는 골체오름이 앙증맞게 앉아있고, 그 너머엔 민오름이 육중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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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름 산책로 |
머릿속으로 주변의 풍광을 상상하고 길을 나선다.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하산 길로 나서면 길은 다시 굼부리 바깥으로 향하며 경사가 있는지 나무계단이 맞이한다.
중간쯤 내려가는데 일제의 상흔이 나타난다. 산허리에 게릴라전을 위한 진지동굴을 파놓았다. 강산이 예닐곱 번은 바뀌었을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상처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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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지동굴의 모습 |
이제 그 상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새로운 세대들은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오름은 이렇게 말없이 역사를 증언하려는가 보다.
목장 길로 내려서니 일본군이 주둔했었다는 곳에는 마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그러고 보니 건너의 오름은 새 말, 즉 길들여지지 않은 말을 길들이던 오름이라는 새몰메이다.
새 말을 길들이려는 테우리들의 소리와 천방지축 내닫던 말들의 투덜대는 소리, 이 평화로운 정경이 영원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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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름전문가 김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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