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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이의 오름이야기(4)용이 머물렀던 자리 용눈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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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8.25  11: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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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인 오월의 날씨이다. 햇살은 따사로운데 신록의 나무 아래 서면 바람은 선선하다. 산을 즐겨 찾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번쯤 유혹될 법한 날씨이다.

 한창 공사 중인 번영로를 따라 대천동 사거리에 이르러 왼편으로 돌면 비자림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가면 송당 마을이 나오고 중산간도로와 만나게 된다. 이 사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돌아 중산간도로를 따라 수산리 방면으로 4.6Km를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종달리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1Km 정도가면 오름 기슭에 닿게 된다. 예전에는 등산로만 정비되어 있었는데 이제 제법 번듯한 주차장까지 갖추어져 있다. 등산로도 일부 구간이나마 고무판이 아닌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여 새로 깔아놓았다. 이렇듯 신경을 쓸만큼 유명세를 타는 오름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 용눈이 오름 전경

 용눈이오름, 이름도 예쁘다. 세 개의 굼부리가 연이어 있는 모습이 꼭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 용와악(龍臥岳)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용이 누웠던 오름이라고 그냥 ‘용눈오름’으로 하지 않고 ‘이’를 붙여 ‘용눈이’라고 하니 마치 다정한 친구를 부르는 듯하다. 해발고도 248M, 비고 88M이니 그 이름값에 비하면 나지막한 모습이다. 사실 인근에 높직한 높은오름과 커다란 다랑쉬오름이 있어서 크기로만 보면 기가 죽을 수도 있겠으나, 어디 세상만사가 크기로만 평가되던가. 여인네의 매끄러운 몸매를 연상케 하는 곡선미는 가히 견줄 오름이 없다. 그렇다. 이 섬은 여인의 섬이다. 단순히 삼다중의 하나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이 섬을 만들고, 또 한라산을 만들고, 오름을 만든 창조주가 설문대할망이라는 여성이다. 또한 이 섬의 백성들에게 오곡의 씨앗을 주어 농경을 시작하게 한 이 역시 자청비라는 사랑과 농경의 여신이다. 신화의 시대를 벗어나 조선시대로 넘어오더라도, 가장 혹독했다는 갑인년 흉년에 백성들을 구휼했던 분도 김만덕 할머니가 아니었던가. 뿐만 아니라 부족한 인구 탓에 섬의 방어를 위하여 여정(女丁)이라는 여군도 두었었다. 또 근래 까지도, 저승 문턱과도 같다는 거친 바다에 뛰어들어 자식들을 키워낸 해녀들이 우리의 어머니들이다.

   
▲ 용눈이 오름의 또다른 모습. 멀리 일출봉이 아스라히 보인다.

 오름 전체가 초록색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개의 봉우리가 세 개의 연이은 굼부리를 싸안고 있는데, 그 모습이 용이 누웠던 자리라기보다는 커다란 용이 한바탕 용트림을 한 흔적과 같은 모습이다. 또 사면은 마치 부챗살과 같이 퍼지면 흘러내렸다. 서쪽으로 앙증맞은 봉우리 하나가 딸려 있는데 마치 밥주발 뚜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이 오름과 합쳐서 보면 그 모양새가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노는 어린 딸의 모습과 같아 여간 예쁘지 않다.

 능선 길을 따라 굼부리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남서쪽엔 사면에 특이하게도 X자 모양으로 삼나무가 식재된 손지오름이 다정히 서있고, 동쪽 멀리 바닷가에는 성산 일출봉이 눈에 선하다. -일출봉이 아니라, 원래 이름이 봉우리의 모습이 성을 둘러놓은 듯 하다하여 성산이다. 이제 그 이름을 마을에 내어주고 대신 일출봉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성산이라는 그 이름마냥 이 섬의 동쪽을 지키는 굳건한 성채와도 같은 모습이다.

   
▲ 용눈이 오름 굼부리. 이 모습이 용이 누웠던 자리 갔다고 용눈이 오름이다.

 매끄러운 풀밭길을 걷는다. 요즘 거의 콘크리트만 밟던 발이 간만에 딛는 폭신함에 절로 신이 났다. 오월의 싱그러운 풀내음이 폐부까지 스며든다. 유독 할미꽃이 많이 눈에 띄는데, 꽃피는 시기가 좀 지난 탓인지 꽃은 지고 이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하얀 머리를 내밀고 있다. 할미꽃은 시간이 지나면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꽃이 되는가 보다. 이 할미꽃은 공해가 있으면 살지 못해서 오염 여부를 가늠해보는 척도로 쓰이기도 한다하니, 이 오름은 아직 오염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가 보다.

 마치 파도를 넘는 듯 오르내리다 정상에 서니, 발아래에 마치 왕릉과도 같은 알오름(이류구)들이 모여 있다. 이 알오름 또한 그 모습이 여간 예쁘지 않다. 화산이 폭발할 때 쌓였던 송이(화산쇄설물)들이 용암이 흘러내림과 함께 떠밀려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알오름들은 오름에 비해 크기가 작고 또 관심도 적다보니, 언제 무참한 삽질에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오름만큼이나 소중한, 그리고 잘 보존해야할 제주만이 갖고 있는 자산들이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들이 마치 모자이크를 맞춰놓은 듯 펼쳐져 있고. 연록의 풀밭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지난겨울 추위보다 더 혹독했던 구제역을 견뎌내고 맞이하는 새봄이라, 그 감회가 여느 해와는 다를 것이다.

 걸어온 길을 몇 걸음 뒤집어 남동쪽 사면으로 하산 길을 잡았다. 옛길이다. 산책로로 정비가 되진 않았으나 사람들이 오르내리던 자취는 선명하다. 용눈이오름을 한 바퀴 돌고 넘어 오는데 가슴 가득히 무언가 들어찬 느낌이다. 산으로 가는 길은 비우러 가는 길이라는데, 그 경지가 아직 나에게는 멀리 있는가 보다.

   
▲ 오름전문가 김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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