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겨울이라도 그렇지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춥다.

굳이 삼한사온을 들먹이며 요구하지 않더라도, 가끔씩은 날이 풀려주는 법인데 스무날 넘게 추위가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오늘, 소풍처럼 떠나고자한 그 날에 소풍가기 딱 알맞은 날씨가 돌아왔다. 그런 봄 같은 겨울날, 가볍게 떠난다. 북오름으로.

▲ 북오름 표지판.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 자리잡은 오름이다.

제주의 중산간 도로인 1136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조천읍 선흘리가 나오고, 이 마을 동쪽 알바메기오름을 지나면 목선동 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2Km 정도를 더 가면 왼편에 북오름이라는 표지판이 서있다.

바로 도로에 인접한 오름이다. 그래서 더욱 발길이 소원했던 오름이기도 하다.

대 도로변 가게가 생각보다 오히려 장사가 더 안 되는, 뭐 그런 묘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스쳐 지나가기만 할뿐 좀처럼 내려서 찾아보기엔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도로변에서 바라보는 오름의 형상은 전혀 특색이 없다. 그저 평범하고 둥그런 모습에 삼나무가 빽빽이 심어져 있어, 그다지 발길을 잡아끄는 매력이라고는 없다. 비고 역시 86m로 높아보이지도 않고 그저 그런 오름 정도로 보인다.

북을 닮아서 북오름이라고 부른다는데, 어디에서 봐서 북을 닮았는지 모를 일이다.
 
한자로도 역시 북을 써서 고악(鼓岳)이라고 표기한다.

고어에 북은 높다는 뜻이 함께 있다고 하니 높다는 뜻의 북오름인가 헤아려 봐도 인근에 이보다 높은 오름들이 없지 않으니, 이 해석 또한 명쾌하지 못함은 마찬가지다.

해석이 어떠하든 뭐 어떠랴. 이름은 불러주면 이름이 되는 것이다.

▲ 남쪽사면에 개설된 등산로. 남쪽 사면은 온통 삼나무가 심어져 있다.

삼년쯤 전에 오름에 산책로를 개설하고 입구에는 오름을 안내하는 표지판도 달아 놓았다.

산행의 출발점인 남쪽사면이 온통 삼나무로 식재되어 있는데, 이 삼나무 군락이 참 고약하다. 도대체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모른다.

제주의 오름 어디서나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청미래덩굴도 이 삼나무 숲에서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한다. 나무 틈새로 조금씩 떨어지는 햇살조각에 의지하여 겨우겨우 생명을 부지할 따름이다.

▲ 삼나무 숲 바닥에 어렵게 자라난 청미래덩굴 잎사귀다. 궁금한 것이 이 계절이면 잎을 모두 떨구고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 녀석은 새싹인지 단풍인지.

십여분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능선에 다다른다. 그런데 여기에 펼쳐지는 풍광이 예사가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노랫말 같이 '반전이 있는' 오름이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도로에서 보이는 모습만을 오름의 모두인 양 생각해왔던 그 생각의 졸렬함이 부끄럽다.

바닷가 방향으로 말굽형 굼부리가 벌어지고 그 너머로 넓은 평원이 펼쳐지는데 마치 그 평원이 이 오름에서 시작되는 느낌이다. 아니 평원의 모든 기가 이 오름으로 빨려드는 모습이기도 하다.

발아래로 선흘 곶자왈이 동백동산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겨울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 굼부리 서쪽 능선에서 바라본 정상의 모습. 굼부리 안은 말라버린 억새와 자연림이 무성하다.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다다랐다. 쉬어가라는 의자도 마련돼 있고, 정상임을 알려주는 삼각점도 설치돼 있다.

동쪽으로는 나무들 틈새로 어렴풋한 모습들만 조망될 뿐이지만, 북쪽으로는 드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동백동산에서 김녕리~ 한동리로 이어지는 평원이다.

저 평원 어딘가에 만장굴이 있을 것이고 또 김녕사굴도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태왕사신기를 찍었던 세트장도 있다.

저 푸르게 남은 선흘곶자왈에는 숯을 구워 어려운 삶을 이어가던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고, 그 숲 언저리 어딘가에는 4.3의 난리를 피해 굴속으로 숨어들었다가 폭도의 누명을 쓰고 죽어간 넋들이 숨죽인 울음도 남아있을 것이다.

서쪽에는 쌍둥이처럼 닮은꼴이라는 웃바메기오름과 알바메기오름이 연이서 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서쪽 하산길. 경사가 제법 가팔라서 이렇게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등산로가 “ㅅ"자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서, 올라온 길을 버리고 서쪽으로 하산 길을 잡았다.

굼부리의 능선을 따라 도는 길이다. 상상했던 그 이상의 커다란 굼부리가 장관이다.

또한 남사면의 조림된 경치와 달리 자연림이 무성하다.

올라오는 길과 달리 내려가는 길은 그 경사가 제법이어서 돌계단까지 만들어 놓았다.

흔히 '오름은 올라봐야 그 맛을 안다'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실감이 가는 오름이다.

도로변에서 바라보는 평범한 모습과 달리 막상 올라보면 전혀 다른 오름을 걷는 착각을 주는 오름이다.

이왕에 나선 걸음, 선흘곶자왈 동백동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제주레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