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날씨와 드넓은 초원, 예로부터 제주는 목축의 최적지로 꼽혀왔다.

제주목사가 하는 일이 목민보다 목마가 더 크다는 말이 거짓된 과장만은 아니었다. 제주의 중산간지대 대부분이 목장으로 운영되다보니 목축과 관련된 지명이 제법 많이 남아 아직도 전해진다.

새몰메라는 오름도 있고, 몰 쉬운 못(말을 쉬게 했던 못)이라는 연못도 있다. 그리고 여기 소가 진을 쳤다는 오름 우진제비가 있다.

▲ 번영로 변에서 바라본 우진제비오름.

우진제비오름. 한자로 牛鎭岳(우진악) 또는 牛鎭山(우진산)등으로 표기가 되니 해석하면 소가 진을 치고 있던 오름 정도 되겠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뒤에 제비는 왜 붙었는지 모를 일이다. 오름의 모양이 날아가는 제비를 닮았다는 해석이 있기는 하나, 어디를 봐서 날아가는 제비를 닮았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고, 이는 아마도 억지해석인 듯싶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속하는 오름으로 해발 410m, 비고는 126m로 평균 이상의 높이를 갖는다.

번영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새미오름을 지나면 왼편으로 제법 큼지막한 오름 하나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우진제비오름이다.

선흘2리 옛 양잠단지 마을로 들어서서 자그마한 분교장을 지나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북쪽으로 가다보면 우진제비오름이라는 오름 표지석을 만난다.

이 길을 따라가면 오름 기슭에 닿게 되나, 산책로 입구까지는 오름 주위를 따라 오른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된다.

포장길과 비포장길이 교대로 나타나는데 길을 잘못 들었나 의심할 즈음에 산책로라는 나무푯말과 함께 승용차 석대정도 세울 수 있는 주차공간이 나타난다.

▲ 오름 표지석. 이곳을 지나고서도 한참을 더 가야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번영로에서 바라보는 오름의 모습은 삼나무가 가득한 둥그런 오름인데, 막상 이곳에 와서 보니 분화구 안쪽은 온통 자연림이 무성하다.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굼부리를 갖는 오름으로, 말굽형의 오름치고는 경사가 급하다. 산행 길의 초입부터 경사가 심한 탓인지 반갑지 않은 돌계단이 먼저 우리를 맞이한다.

한 가지 반가운 것은 그냥 돌계단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한 옆으로 나지막하나 돌담을 쌓아놓아 정감을 살렸다는 점이다.

한번 숨이 차오름 즈음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진샘이라는 푯말이 나타난다. 뒷일이야 어찌되든 일단 핑계에 쉬어갈 일이다. 전에는 방치되다시피 했었는데 이제 탐방로 개설과 함께 제법 잘 가꾸어 놓았다.

▲ 우진샘.

두 개의 둥그런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샘이 솟아나는 곳에는 바가지도 준비해 놓았다.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던 시절, 얼마나 소중한 물인가.
아마도 사람뿐이 아니라 소들도 이 물을 마시러 모여들어 우진이라는 이름 붙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진샘의 복원전후의 모습과 전설을 담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예로부터 우진샘은 사시사철 맑은 물이 끊이지 않아 가뭄이 들었을 때는 선인동, 덕천에서까지 식수로 사용하였으며, 산세가 천월장군이 태어날 곳이라 하는 명당이다. 우진샘에서 바라보이는 뱅뱅뒤는 천군이 모여 있는 상이고, 우진샘은 천월장군이 칼을 차고 사열하는 터라 하였다”

졸졸거리는 물줄기에 비하면 실로 거창한 해석이라 잠시 입가에 미소를 지어본다.

샘을 뒤로하고 능선으로 향하는 등정길에 나섰다. 때가 겨울인지라 나무들 모두 잎사귀를 떨구고 앙상한 모습이다. 군데군데 다른 나무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녀석들만 염치없이 푸르른 모습이다.

다시 한참을 헐떡이고 나서야 능선길에 접어든다.

고생 끝 행복시작. 오름 등반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 바로 능선길을 걷는 기쁨인데, 이 오름의 능선길은 더 길고 평탄해서 그 기쁨이 두 배이다.

▲ 정상에 전망대를 마련해 놓았다.

이윽고 전망대를 잘 갖추어놓은 정상이 우리를 기다린다. 나무들이 키가 커서 주변 경관을 가렸었는데 새로이 전망대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전망대에 오르니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다.

분화구가 트여나간 저 벌판이 천군이 모인 상이라는 뱅뱅뒤 인가? 그 너머 북쪽으로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웃바메기오름과 알바메기오름이 열을 지어 섰다.

동쪽에 물결치듯 여러 구비를 이루고 있는 오름은 바로 세계자연문화유산인 검은오름이다. 그리고 부대오름과 새몰메가 이어진다.

서쪽에는 또 하나의 샘을 품고 있는 오름 새미오름이 있고, 그 옆으로 이름도 예쁜 꾀꼬리오름이 앙증맞게 앉아있다.

한라산엔 하얀 눈이 이불처럼 덮여 계절을 말해주고 있지만, 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들녘엔 푸르름이 남아 정감을 더해준다. 제주의 겨울 마냥 삭막하지만은 않은 것이 좋다.

오던 길을 뒤로하고 서쪽 능선을 따라 하산 길로 나선다. 내리막 경사가 보통을 넘는지라 다들 한마디씩 한다.

 “이쪽으로 올랐다면 진 깨나 뺏었겠다”<제주레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