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4.3 기억과 현재' 사진공모전 우수작, 류인자作 '그리움'.

최근 들어 제주에선 과거 문인들이 제주에 유배왔던 역사적 사실을 테마로 한 관광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조선시대 폭군으로 널리 알려진 광해군도 제주로 유배되었다는 역사를 바탕으로 뮤지컬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매해마다 제주4.3평화공원엔 수학여행단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등 '역사'를 올바로 알기 위한 관광상품들이 관광객들에게 선보여지고 있다.

좋은 것만 보고 들으려 했던 기존 관광의 행태에서 새로운 관광의 패러다임이 제시된 것이다.

전쟁이나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한 관광이다. 이를 '다크투어(Dark Tour)'라고 부른다. 국립국어원에선 우리말 다듬기를 위해 '역사교훈여행'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른바 반면교사(反面敎師)를 몸소 실천하는 행위다.

▲ 제주4.3 평화재단 홈페이지.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용어는 1996년에 처음 등장했으며, 2000년에 칼레도니언 대학(스코틀랜드) 맬컴 폴리와 존 레넌 교수가 함께 쓴 책을 통해 널리 쓰이게 됐다.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 유명한 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폴란드)다. 세계2차대전 당시 약 400만명이 학살당했던 곳으로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관광객들이 나치의 잔학상을 목격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9.11테러로 발생했던 미국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부지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도 매년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고인의 넋을 달래고 있다.

이와 같은 곳이 바로 제주에 건립된 '제주4.3 평화공원'이다.

이곳은 1948년 당시 경찰과 군경으로 구성된 토벌대에 의해 만여명이 넘는 제주도민들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됐던 역사적 사실을 추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 제주4.3 평화공원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제주4.3 사건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지난해 이곳 평화공원을 찾은 이가 20만명을 넘었다.

사건 발생 후 대한민국 정부는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4.3사건을 '폭동'으로 간주해왔다. 3만여명이 넘는 유족들은 '빨갱이'로 오인받아 차별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2000년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공포되면서 그 해 8월 28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발족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위원회는 진상조사 결과 제주4.3사건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희생자 신고접수를 받았다. 접수결과 1만5100명으로 집계됐지만, 미신고자와 미확인 희생자 등을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직도 희생자 추가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정부는 故 전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0월 31일에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한 정부는 제주4.3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의 하나로 4.3 평화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해 2008년 3월 28일에 4.3평화공원을 개관했다.

노 대통령은 2006년에 대통령의 자격으로서 최초로 제주를 찾아 위령제 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현재까진.

노무현 정부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위령제 행사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 뒤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제주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대통령 후보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올해 65주년을 맞는 4.3 위령제 때 박근혜 대통령은 불참을 통보했다.

'제주4.3사건의 완전한 해결' 과제 중 하나인 국가추념일 지정 또한 불분명한 상태다. 건의한지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 제주4.3 평화공원.

이 뿐만 아니라 4.3평화공원 3단계 조성사업도 흐지부지 될 전망이었다가 총사업비 120억원 중 올해 30억원이 배정돼 간신히 착공할 수 있게 됐다.

3단계 조성사업엔 평화교육센터, 고난극복 체험관, 하늘 연못 등을 만드는 사업이 포함돼 있다. 원래대로라면 4.3평화공원 조성사업은 2011년에 완료됐어야 했지만 그동안 정부에서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

제주의 경우 외에도 국내엔 국립5·18민주묘지, 거제포로수용소,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이 다크투어 장소로 관광객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이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 개방됐다.

지난 2003년 2월 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는 시민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부상을 당한 세계 최악의 지하철 참사였다. 사건 발생 후 유족들은 이곳을 개방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고 주장해 왔으나 대구시가 반대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통행이 금지돼 왔다.

그러다 올해 10주기를 맞아 대구시가 유족위원회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 2월에 개방했다.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벽에는 화염에 녹아내린 흔적들과 '엄마가 미안하다', '천국 가세요' 등의 희생자 유족들과 추모객들이 적어놓은 글귀들이 적혀있다.

이러한 다크투어 명소들은 사건 발생 후 바로 관광지로 복원된 것이 아니다. 관광지로 변해가는 것을 꺼려하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기억하기 조차 싫은 역사를 통해 진정한 평화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교훈의 장으로서 여겨져 조성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런 장소는 단지 기념사진을 찍거나 훑어보는 관광지로서 여기면 안된다. 다크투어 여행지에선 경건한 마음으로 역사적 교훈을 얻어가는 곳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제주레저신문>

▲ 제주4.3사건을 소재로 영화화된 제주출신 오멸 감독의 작품 '지슬'. 대한민국 독립영화계 최초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