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의 절반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람들이 그 이미지를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정치인의 행위를 단순하고 명쾌하게 분석해낸 말이다.

지방선거가 210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인들의 고개가 조금씩 더 숙여지고 국민을 말하고 도민을 입에 올리는 빈도가 더 잦아질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이미지를 만들고 이미지를 믿게 만드는 ‘작업’에 기하는 강도가 높아질 것이다.

제주지하수와 한진증산 건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좋은 재료‘꺼리’다.

특히 박희수 제주도의회 의장과 신구범 전 지사가 이를 이용한 이미지 형성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는 최근, 박 의장에 대한 기사에서 “‘제주지하수를 지킨 사람’ vs ‘제주지하수를 팔아먹은 사람’이라는 대립구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박희수 의장이 우근민 지사에 대한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한진 증산건은 대(對) 우근민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고유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도의회 40%가 넘는 17명의 도의원이 서명으로 촉구하는 상정 촉구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것 아니겠는가.

신구범 전 지사도 이에 못지 않다. 재임기간 중 삼다수 설립을 정치적 이미지로 적극 활용하려는 복안으로 보인다. 모 인터넷신문에 연재는 물론이고 “만약 한국공항에 월 9000톤을 주는 순간 제주 삼다수는 민영화되기 시작한다"는 등 무리한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신용인 변호사도 나섰다. 지난달 22일 있었던 세미나에서는 ”삼다수는 아버지가 만들었다“며 ”아버지가 미국에 갔다가 사람들이 생수를 사 먹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들이 아버지 선거운동을 거드는 것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다 보니 무리한 주장도 여과 없이 나온다. “상생” 방안이라면서 한국공항 생수공장을 제주개발공사에 넘기라는 일방적인 제안도 던져진다.

▲ 박희수 의장, 신구범 전 지사

최근 보도에 따르면 박희수 제주도의회 의장은 곧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할 모양이다. 도지사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신구범 전 지사는 이미 유력한 후보군 중 한명이다. 박의장, 신 전 지사 모두 이렇다할 브랜드가 없다는 것이 약점이다. 이런 이유로 제주지하수, 삼다수 ‘이미지’를 외투로 걸치려는 전략은 일견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정을 보류하면서 박희수 의장이 말하는 “소중한 공공자원”, “제주도민의 자존”, "후세에 물려줄 의무“ 등은 슬로건에 그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박 의장 진심이 그렇다면 하루 20톤을 못 준다는데 ‘목숨’을 걸 것이 아니라 이 보다 수십배, 수백배 더 남용되고 있는 지하수에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슬로건의 타당성과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삼다수로 퍼올리는 물이나 한진이 취수하는 물이나 골프장, 호텔, 리조트가 사용하는 물은 모두 품질이 같은 제주지하수 아니던가. 참고로 가뭄이 심했던 지난 8월 서귀포시 소재 모 골프&리조트가 사용한 지하수는 7만톤이 넘는다. 단 한달에 7만톤이 넘는다.

신구범 전 지사는 지난 4월 “삼다수와 한진이 경쟁하면 누가 이기겠느냐”며 사실상 독점을 주장하는 늬앙스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몇 년전인 지난 지방선거에서 신구범 전 지사는 당시 한나라당 현명관 후보와 합석해 가진 경제정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고(희범) 후보는 형평성 중심으로 가는 반면 현 후보는 효율성과 공정성을 똑같이 높게 본다”고 말한 바 있다. 말이 많이 달라졌다.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것인지 자리마다 다르게 나오는 것인지 의문이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정치인 의견이 다 같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하지만 제주도의 미래 산업 중 하나인 물 산업에 대해 과도한 정치적 활용은 바람직 하지 않다. 선거가 다가 올수록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도민은 어리숙하지 않다.

99%를 방치하고 1%도 안되는 먹는샘물이 ‘공수화’의 전부인양 호도하며 ‘제주도민 이익의 수호신’ 인양 자처하는 행태에는 신뢰를 부여하기가 영 망설여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