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제주도에서 ‘착한가격업소'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책자에는 도내 ‘착한' 음식점, 이미용업, 세탁업, 목욕업소 등 140여 개 업소가 수록돼 있다.

책자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착하다'의 기준은 가격이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하이데거 말을 빌리자면 제주도 내 음식점 중 일정 가격 이상을 받고 있는 곳은 ‘착하지 않은'에서 ‘나쁜'까지에 포함돼 버린다.

‘착한가격업소' 관련 기사가 나간 후 요식업을 하는 독자가 연락해왔다. 임대료, 종업원 고용, 서비스, 음식의 질 등 식당마다 사정이 제각각인데 가격만을 위주로 ‘착한가게'라고 규정지어버리는 것은 횡포라는 주장이었다.

음식업을 비롯한 세탁소, 이미용업체들은 자선사업체가 아니다. 이윤 추구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다. 사정은 제각각 이겠지만 수입이 있어야 직원 급여, 자식들 학비, 부모 봉양을 할 수 있을 것임은 상식이다.

제주도의 기준이라면 종업원을 수 십명 고용해야 하는 규모의 음식점은 원천적으로 착하기는 불가능해진다. 단적으로 20명 이상 단체를 받을 수 있는 규모라면 절대로 착할 수 없어진다. 임대료가 비싼 도심의 패밀리레스토랑도 마찬가지다. 음식 재료를 최상급으로 사용해도 ‘넌 안착해'가 된다.

▲ 단지 보임을 위해 문어가 산 채로 삶아진다

책자에 수록된 업소가 가격을 올리면 그 가게는 이제 더 이상 ‘착한' 가게가 아니다. 재료 가격이 어떻게 춤을 추든 간에 짜장면집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가격을 인상하지 않아야 착하게 된다. 돼지고기 가격이 올라도 삼겹살집이 착함을 유지하려면 가격인상은 안된다.

제주도의 ‘착한' 기준을 숙박업에 적용하면 특급호텔은 모두 ‘착하지 않은’에서 ‘나쁜'까지의 호텔이 된다. 호텔에서 가장 비싸다는 스위트룸은 그야말로 ‘악덕'이 되어야 하고 여인숙이나 허름한 모텔 은 ‘착한’ 숙박업소로 변신한다. 중세 카톨릭의 면죄부를 제주도에서 발급하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만을 기준으로 ‘착한 틀’을 만드는 것은 제주도정의 음흉함마저 느껴진다. 물가관리 수단으로 서민을 이용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좋은 재료와 좋은 서비스, 맛있는 음식을 제값받고 파는 곳이 ‘착한' 가게가 돼야 한다. 고통을 느낀다는 문어를 산채로 집어넣는 가게, 순대 찍어먹는 소스가 MSG 범벅인 가게, 쉰밥을 주고 바꿔달라니까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추가 가격을 받는 가게 등이 안 착한 가게다. 더불어 중국산 옥돔을 국산으로 속이는 ‘옥돔명인, 중국산 말고기를 제주산으로 속여 파는 업소, 구경하기도 힘든 제주산 다금바리를 하루에 몇 마리씩 파는 횟집 등이 착하지 않은 가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