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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이의 오름이야기(7)땅 할아버지, 따라비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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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0.31  11: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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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여름은 실로 유별났다. 더위가 무더워서 유별난 것이 아니라, 이 섬 서남부지역의 경우 한 달 넘게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매일 우중충한 날씨에 여름 농사는 폐작이 되고 말았다. 참기름의 고소한 내음을 기대하며 깨를 조금 심었는데, 조금 자라다가 채 꽃도 못 피워보고 사그라지고 말았다. 차마 어린 싹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못 본체 하고 말았을 정도이다.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다고 했던가. 계절의 변화 역시 아무도 막지 못할 터, 지리했던 여름엔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이제 들판에 내려앉고 있다.

   
▲ 오름표지판
 따라비오름. 표선면 가시리에 위치한 오름이다. 해발 342M, 비고 107M.
쉽게 찾아가는 길은 5.16도로에서 비자림로를 따라가다 보면 대천동 사거리 조금 못 미쳐 오른쪽으로 가시리 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가시리 마을 입구에서 성읍리 방면 100여M 지점 왼편에 보면 자그마한 오름 입구 표지가 서있다. 이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그 끝 지점에서 오름과 만나게 된다. 요즘 찾는 이들이 많아서 자그마한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고 오름 표지판도 달아놓았다.

 또한 번영로변 성읍2리 정류장에서 오른쪽 농로를 따라 10여분 가서 오른쪽으로 초원을 가로질러도 이 오름에 닿을 수 있다. 이 길을 택할 경우 인근에 있는 모지오름과 함께 둘러보면 묘미가 배가된다. 사실 이 오름은 북쪽에서 바라볼 때 그 멋이 훨씬 더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길이고 지인들이 물어오면 추천하는 길이기도하다.

   
▲ 따라비오름 전경. 이 오름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억새의 물결과 더불어...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이 가을을 맘껏 즐겨볼 요량으로 또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정석항공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큰사슴이오름을 지나 벌판을 가로질러 따라비오름으로 가기로 하였다. 이 길은 지난 봄, 산악마라톤 대회가 이곳에서 열리면서 만들어진 길이다.

 작년에는 이 들녘에서 유채꽃 큰잔치가 열렸었는데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유채가 노랗게 피었던 그곳엔 올해도 다시 씨앗을 뿌렸는지 자그만 새싹들이 올라오고 있고, 국궁장을 만들면서 설치되었던 과녁도 그 모습 그대로 서있다. 그 옛날 녹산장이라는 이름의 유명한 목장이 있던 이 벌판엔 지금은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땐 제법운치로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서니 그 거대한 크기가 괴물같이 느껴진다. 돈키호테가 장창을 비껴들고 달려들었던 풍차가 이만큼 했을까.

   
▲ 큰사슴이오름과 따라비오름 사이 옛 녹산정 터에 풍력 발전을 위한 거대한 풍차들이 서있다.
 마라톤 코스임을 알리는 표식을 따라 담을 하나 넘으니 억새의 향연이 펼쳐진다. 사실 초가집이 대세이던 어린 시절 이 억새는 퇴치의 대상이었다. 초가집 지붕을 얹기 위해 새왓(띠밭)을 가꾸기도 했는데, 봄이면 이 새왓에 가서 억새를 뽑던 기억이 생생하다. 새(띠)보다 키가 크다보니 새의 성장을 방해하고 또 소나 말의 먹이로도 적절치 못해서 수시로 뽑아내곤 했었는데, 이제 초가지붕도 거의 사라지고 나니, 새왓도 대부분 농지로 개간이 되거나 해서 없어지고 억새들에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것이 억새들에겐 살맛나는 세상이 된 셈이다. 이젠 억새의 은빛물결은 가을의 상징처럼 되었다.

 억새를 조금 헤치자 오른편으로 따라비의 아름다운 곡선이 드러난다. 인근에 모자오름 -혹은 모지오름이라고도 한다.- 장자오름 새끼오름이 있어서 그중에 가장 어른격이라고해서 땅할애비오름(땅할아버지오름)이라고 불렀던 것이 이후 따라비로 변형되었다는 재미있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의 해석은 좀 달라서, 고어인 다라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라는 달(達)에서 유래하여 높다는 뜻이고 미는 오름을 뜻하는 접미사인데, 이 다라미가 변형되면서 따라비가 되었다고 해석한다. 대체로 학자들의 해석은 재미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오름 곡선만큼이나 어감이 매끄러운 오름이다. 따라비오름.

 능선으로 오르는 길에 가을 야생화가 지천이다. 가을 야생화 중 최고라는 하얀 물매화가 여기저기 피었는데 보기 드물게 큰 꽃망울을 열고 있고 꽃향유도 자주색으로 아름답게 피어났다. 또한 자주쓴풀, 섬잔대등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능선에 올라서자 세 개의 굼부리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양푼에 밥그릇 세 개를 담아 놓은 듯한 모습인데, 제주의 오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세쌍둥이 굼부리라고나 할까. 이렇듯 원형 굼부리를 세 개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모습은 북쪽으로 트인 말굽형 굼부리의 형태이다. 물론 말굽형 오름답게 벌어져나간 앞쪽으로는 알오름도 생성되어 있다.

 세 개의 굼부리가 서로 능선을 맞대어있고, 그 능선이 만들어내는 곡선이 정말 아름답다. 굼부리 안쪽 이곳저곳에 돌탑들을 세워 놓았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되 방사탑의 형태로 제법 번듯하게 만들어진 것이 있는가하면 지나는 길손들이 하나둘 얹어 만들었는지 형태도 없이 쌓아올려진 것들도 있다. 쌓인 돌맹이 하나하나마다 누군가의 소망이 하나씩 들어있으리...

   
▲ 능선길엔 사악한 기운을 방지하는 탑, 방사탑의 형태로 돌탑을 쌓아놓았다.
 오름능선의 바깥둘레를 따라 세 개의 굼부리를 안고 도는데 계절에 맞지 않게 철쭉꽃이 붉게 피었다. 이 오름은 해발이 비교적 낮은 오름임에도 봄이면 철쭉이 만발하는 오름이기도 하다. 헌데 가을에 철쭉이라니... 오만한 인간들에게 무언가 항의하는 시위로 느껴진다.

 정상에 서니 이 오름(땅할애비오름)이 거느리고 있는 오름들이 모두 이웃해 있다. 모지오름 새끼오름 장자오름, 그 바깥으로는 큰사슴이오름 성불오름 설오름... 등등 그리고 이 모든 오름들을 품에안고 있는 한라산이 의젓하게 오름들을 내려다보고 있고 시선을 돌리면 남으로 태평양의 푸른 물결이 아득하다.

 세 개의 굼부리가 만나는 중간에 무덤이 하나 있는데, 풍수의 좋고 나쁨은 모르겠고 아름다운 오름의 한가운데 위치함은 부럽다. 혹여 이 오름을 무척 사랑했던 어떤 분이 이 오름의 지킴이를 자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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