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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하는 소리인 어음(語音)을 적는 데 맞는 중(中)한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닉네임 : 김민수  2015-04-09 13:45:30   조회: 9182   
우리 말하는 소리인 어음(語音)을 적는 데 맞는 중(中)한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조선국의 말하는 소리인 어음(語音)이 맞는 중(中)하지 않은 한자(漢字)와 다르다







http://blog.naver.com/msk7613











대한시대(1897- ) 대한광복운동기(1906-1945)에 일본군국주의에 저항하여 한국사,한글 연구 활성화,우리 나라 전적은 5침 안정(五針 眼訂)을 한다.훈민정음 @@본은 5침 안정(五針眼訂)이 아니라 4침 안정(四針 眼訂),훈민정음 반포 기념식(1930년) 준비하며 한글연구단체가 1920년대에 목판본 제작해 인본(사진판) 배포,1920년대에 한글 연구단체가 훈민정음 @@본 제작,훈민정음 @@본 수보(修補) 사실 1927년 신명균이 고증,1946년 10월 9일 문교부가 대학에 훈민정음 인본 증정,1946년 안동 광흥사 소장,1951년 영주 희방사 소장 훈민정음,월인석보 목판 소실,문화재 매매 관계자가 훈민정음 @@본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신뢰할 수 없고 문화재 미 인지 상태에서 고서를 구입하였는데 그 속에 끼어있었다면 지중,수중,건조물 안,종교조각 속 매장문화재이다,훈민정음 @@본은 위작. 문화재 매매는 매도인이든 매입인이든 진위 감정,가치 평가 후에 이루어져,@@본이 진본이면 매도인이 @@@에게 팔았겠는가? 훈민정음 @@본 진본이면 @@@이 @@@에게 @@만원에 팔았겠는가?@@본은 인본을 춘설수로 위조한 위작이다. 우리 말을 한자로 적는 불편한 것을 그만두고 창제한 우리 말과 부합하는 일치하는 한글로 표기하라고 백성에게 알리는 글인데 @@본은 한자가 한글 뒤에 있어서 以A爲B오류 위작,한자가 한글 앞에 있어야 진본(眞本)이다.문화재급은 문화재급일뿐이므로 오해하지 말아야 하며 전문가는 자칭 전문가가 있고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가 있다. 전문가 행세하는 가짜 전문가를 주의하여야 한다. 감정가,평가액 고액 호가해주고 나눠먹기, 위작 인지하고 매입예산 집행하고 나눠먹기, 복제,모사,영인,배접,탑본,수리 등 허가하고 용역예산 나눠먹기 수사해야








1443(세종 25)년 창제(創製)되어 1446(정통11)년 9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에 반포된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며 현재는 '한글(Hangeul)'이라고 한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한 음절을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는 음소문자(音素文字)이며 음절단위로 적는 음절문자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창제(創製) 당시에는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모두 28자였으나 현재는 24자만 쓰인다. 조선국(朝鮮國:1393-1897) 4대 국왕 세종(世宗)은 명국(明國) 글자 한자(漢字)를 빌려서 우리 말하는 소리인 어음(語音)을 적고 있으나 한자(漢字)는 우리 말하는 소리인 어음(語音)을 적는 데 부합하는 일치하는 맞는 중(中)하지 않으므로 우리 말하는 소리인 어음(語音)을 적는 데 맞는 부합하는 일치하는 중(中)한 글자를 만들기 위해 나라말과 다른 나라글인 한자(漢字)를 배울 수 없었던 백성들을 위해 배우고 익히기 쉬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였다. 훈민정음의 실용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1445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었고 1446년 정인지(鄭麟趾)·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등 집현전 학사(集賢殿 學士)들은 훈민정음의 본문을 풀이한 해례서(解例書)를 편찬했다. 책 이름을 글자 이름과 똑같이 하고 해례(解例)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이라고 하며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은 총 33장 3부로 나누어 1부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2부는 훈민정음 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11(1446)년 9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이라 명시했다. 1443년 12월 30일 이 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표준말이 될 수 없는 말인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 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1446년 9월 29일 이 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에 “조선국의 말하는 소리인 어음(語音)이 맞는 부합하는 일치하는 중(中)하지 않은 나라(조선국) 문자인 한자(漢字)와 서로 달라 세상(世上)에 널리 통용(通用)되는 유통(流通)하지 아니하므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ㄱ은 아음(牙音)이니 군(君)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규(虯)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고,ㆁ은 아음(牙音)이니 업(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ㄷ은 설음(舌音)이니 두(斗)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담(覃)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ㅌ은 설음(舌音)이니 탄(呑)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ㄴ은 설음(舌音)이니 나(那)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ㅋ은 아음(牙音)이니 쾌(快)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ㅂ은 순음(脣音)이니 별(彆)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보(步)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ㅍ은 순음(脣音)이니 표(漂)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ㅁ은 순음(脣音)이니 미(彌)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ㅈ은 치음(齒音)이니 즉(卽)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자(慈)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ㅊ은 치음(齒音)이니 침(侵)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ㅅ은 치음(齒音)이니 술(戌)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사(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ㆆ은 후음(喉音)이니 읍(挹)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ㅎ은 후음(喉音)이니 허(虛)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홍(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ㅇ은 후음(喉音)이니 욕(欲)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ㄹ은 반설음(半舌音)이니 려(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ㅿ는 반치음(半齒音)이니 양(穰)자의 첫 발성과 같고 ·은 탄(呑)자의 중성(中聲)과 같고, ㅡ는 즉(卽)자의 중성과 같고, ㅣ는 침(侵)자의 중성과 같고, ㅗ는 홍(洪)자의 중성과 같고, ㅏ는 담(覃)자의 중성과 같고, ㅜ는 군(君)자의 중성과 같고, ㅓ는 업(業)자의 중성과 같고, ㅛ는 욕(欲)자의 중성과 같고, ㅑ는 양(穰)자의 중성과 같고, ㅠ는 술(戌)자의 중성과 같고, ㅕ는 별(彆)자의 중성과 같으며, 종성(終聲)은 다시 초성(初聲)으로 사용하며, ㅇ을 순음(脣音) 밑에 연달아 쓰면 순경음(脣輕音)이 되고, 초성(初聲)을 합해 사용하려면 가로 나란히 붙여 쓰고, 종성(終聲)도 같다. ㅡ·ㅗ·ㅜ·ㅛ·ㅠ는 초성의 밑에 붙여 쓰고, ㅣ·ㅓ·ㅏ·ㅑ·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 무릇 글자는 반드시 합하여 음을 이루게 되니 왼쪽에 1점을 가하면 거성(去聲)이 되고, 2점을 가하면 상성(上聲)이 되고, 점이 없으면 평성(平聲)이 되고, 입성(入聲)은 점을 가하는 것은 같은데 촉급(促急)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예조 판서 정인지(鄭麟趾)의 서문에 “천지(天地)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 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萬物)의 정(情)을 통하여서 천(天)·지(地)·인(人) 3재(三才)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 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 사방의 풍토(風土)가 구별되니 성기(聲氣)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外國)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명국(明國)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 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는 모두 각기 처지(處地)에 따라 편안하게 해야만 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 문물(禮樂 文物)이 명국(明國)에 견주게 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 날에 신라국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계해(1443)년 겨울에 우리 세종 전하(殿下)께서 정음(正音) 28자(字)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음(音)과 반치(半徵)·반상(半商)의 일곱 음계(音階)의 7음(七音)인 7조(七調)에 합하여 천(天)·지(地)·인(人) 3극(三極)의 뜻과 음양(陰陽)인 2기(二氣)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가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마침내 해석을 상세히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集賢殿 應敎)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박팽년(朴彭年)과 신숙주(申叔舟),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敦寧府 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 集賢殿 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臣) 등이 능히 발휘할 수 없는 바이다. 우리 전하(殿下)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써 제도와 시설(施設)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正音)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인간 행위의 사심(私心)으로 된 것이 아니다.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 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는 도리를 깨달아 이 것을 실지로 시행하여 성공시키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 날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하였다.






11월 26일 이조에 전지(傳旨)하기를 “지금 이후로는 이과(吏科)와 이전(吏典)의 취재(取才) 때에는 훈민정음(訓民正音)도 아울러 시험해 뽑게 하되 비록 의리(義理)는 통하지 못하더라도 능히 합자(合字)하는 사람을 뽑게 하라.”하였다.1447년 4월 20일 세종(世宗)이 이조(吏曹)에 전지하기를 “1444(세종 26)년 윤7월의 교지(敎旨) 내용에 ‘함길도의 자제로서 내시(內侍)·다방(茶房)의 지인(知印)이나 녹사(錄事)에 소속되고자 하는 자는 글씨·산술(算術)·법률·가례(家禮)·원속육전(元續六典)·3재(三才)를 시행하여 입격한 자를 취재하라.’하였으나 관리 시험으로 인재를 뽑는데에 꼭 6가지 재주에 다 입격한 자만을 뽑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 다만 점수가 많은 자를 뽑을 것이며 함길도 자제의 3재(三才) 시험하는 법이 다른 도의 사람과 별로 우수하게 다른 것은 없으니 이제부터는 함길도 자제로서 관리 시험에 응시하는 자는 다른 도의 예에 따라 6재(六才)를 시험하되 점수를 갑절로 주도록 하고 다음 식년(式年)부터 시작하되 먼저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시험하여 입격한 사람에게만 다른 시험을 보게 할 것이며 각 관아의 관리 시험에도 모두 훈민정음을 시험하도록 하라.”하였다.
2015-04-09 13: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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