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에는 윤동주의 시 13편이 영화 전반에 걸쳐 시기 적절하게 나레이션 방식으로 등장한다. 시들이 지닌 의미와 단어는 장면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훌륭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윤동주 시인의 시들을 낱개로 나열한 후에 문맥으로 엮어 영화로 재탄생 시킨 느낌이다. 이런 접근은 각본 작업에서 별다른 고민없이 돌출 가능한 몇 가지 선택사항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추측은 착각이었다. 이준익 감독은 <씨네21> 인터뷰에서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어떤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식민지가 시대적 배경인 모든 영화들에서 일관적으로 풍기는 패배주의를 윤동주라는 실제 인물을 통해서 다르게 해석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즉 시 자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각본을 맡은 신연식 감독 인터뷰에서도 시가 각본 작업 중심축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들을 상기해보면 필자의 추측은 감독의 취향과 다소 거리가 있다. 이 감독은 <왕의 남자>부터 <사도>까지 주로 시대극 연출에 재능을 보이며 흥행과 평가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감독은 영화 메시지를 주요 캐릭터 간 긴장에서 생기는 에너지와 대립각을 통해서 전달한다. 언제나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동주>, 우울한 일제 식민지 시대 배경과 비극적 마무리에도 불구하고 감독 특유의 따뜻함이 묻어 있다. 따뜻함과 다소 밋밋할 수 있는 한 인간의 성장기에 긴장감을 불어 넣어주는 2가지 장치가 있다. 첫번째는 주인공인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기 전까지의 성장 과정과 형무소 안에서 고문을 받는 장면 교차 편집이다. 두번째는 시대상황과 무관하게 시인을 꿈꾸는 윤동주가 송몽규에게 느끼는 열등감이다. 2가지 장치 사이의 틈과 호흡을 시가 메꾼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시는 장치들을 넘어서고 스스로 유일한 장치가 된다. 시가 가진 힘은 연역적 방법론을 귀납적 방법으로 탈피한다.

‘내일은 없다’로 장미빛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대변하고 ‘흰 그림자’로 벗을 중국으로 떠나보내는 외로움을 대변한다. ‘쉽게 씌여진 시’는 타국에서의 고단한 대학생활의 고민과 상념을, ‘병원’으로 형무소 안에서 나날이 병마에 깊어가는 스스로의 체념을 대변한다. ‘새로운 길’로 떠나 있지만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별 헤는 밤’으로 어머니라는 여성 대신 자기 맘에 들어온 사랑의 감정을 대변한다. ‘아우의 인상화’로 자신의 유년기와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을, ‘바람이 불어’로 일본 유학을 결심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을 대변한다. ‘참회록’으로 창씨개명을 받아들이고 일본 유학행을 선택하는 비겁함을, ‘봄’으로 낯선 타국에서의 새다짐을 대변한다. ‘사랑스런 추억’으로 다시금 찾아온 사랑의 설레임과 초조함을, ‘자화상’으로 벗과 자신 사이의 갈등으로 힘든 자화상을 대변한다. ‘서시’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이유없이 죽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대변한다.

시는 모여 영화가 되고, 영화는 시 한편이 된다. 나는 이 영화가 윤동주 시들에 대한 영화적 평론이기를 바란다. 영화의 어떤 장치도 장면도 진심으로 쓰여진 시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 

▲ 김영헌 라비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