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매체의 인터뷰에 따르면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간의 다른 표현법에 대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부산행>이 그의 첫 실사영화인 점과 애니메이션으로 작업 중이던 <서울행>이 한발 늦게 개봉하게 된 점은 무척 아쉽다. <부산행> 프리퀄 격인 <서울행>이 개봉하면 지금의 작은 논란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리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결핍 느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음을 미리 밝힌다.

장르적 영화읽기의 한계
<부산행>이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일부에서 ‘다름에 대한 고민이 없는 전형적인 한국형 상업영화’라는 비판이 있다.‘좀비에 신파를 더한 새로울 것 없는 한국형 블럭버스터’라는 혹평도 곳곳에서 읽힌다. 과연 그런가?

기존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들 특징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육탄전으로만 승부하고, 물리면 감염되며, 소리에 민감하다. 느린 움직임도 대표적 특징이다. 하지만 <월드워Z>를 비롯한 몇몇 영화에서 그 틀이 깨지고 있다. <부산행>은 기존 룰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기차의 속도감과의 균형을 위해서인지 전력질주가 가능한 좀비를 선택했다. 일부 장면에서는 <월드워Z>를 모방한 흔적이 짙다.

하지만 이런점을 제외하면 <부산행>은 기존의 좀비물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부산행>은 제한적인 공간에 갇힌 캐릭터들이 어떻게 좀비화되어 가는지,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고 생존하는지를 밀폐된 공간인 기차의 여러 구조적 장치를 적절히 활용해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좀비들은 일방적이고 이기적이며 목적이 분명하다. 극단적 이기주의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탐욕에 찬 인간들을 좀비라고 치부한다면, 이 들의 창궐 원인이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좀비가 된 인간을 복원시킬 수 있는 처방전 또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결국 영화의 포스터 헤드라인 “끝까지 살아남아라”는 좀비에 희생 당하지 말라는 경고보다는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이해하는게 옳다.

감독은 모든 연령대를 KTX에 탑승시킨다. 임신한 성경(정유미)이 잉태한 태아를 시작으로 결핍된 가족의 사랑을 갈구하는 석우(공유)의 딸 수안(김수안), 청춘을 대변하는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를 비롯한 야구단 멤버들, 신혼부부인 상화(마동석)와 성경, 중년은 다시 계층을 나눈다. 상류층 석우(공유)와 용석(김의성), 중산층 KTX 기장(적석용), 하류층 노숙자(최귀화)이다. 마지막으로 노년을 대표하는 인길(예수정)과 종길(박명신) 할머니 자매를 포함한다.

이들은 갇힌 기차안에서도 좀비화 되지 않기위해 일상 생활에서 맡은 역할과 책임을 재현한다. 아이들은 가장 먼저 보호받는 대상이 되고, 청춘들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좀비와 맞선다. 중년층들은 고군분투하거나 수수방관한다. 노년층들은 문제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다한다. 이런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은 협력으로 성장하거나 내분으로 갈등한다. 평소 우리 모습이다.

영화는 캐릭터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 생활에서 많이 본 익숙하고 전형적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차라는 공간에 고립되기만 했을뿐 평소 자신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대신에 이 영화는 문제 해결과정의 디테일에 집중한다. 앞서 언급한 좀비의 대표적 특징들과 기차의 물리적 구조를 잘 조합하여 액션을 만들어내고, 폐쇄된 공간의 지루함을 덜어내기 위해 역과 터널까지 모든 물리적인 것들을 도입해 이야기 요소로 끌어들인다. 석우 일행이 고립된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몇 개나 되는 기차칸을 이동하는 다소 무모하고 억지스러운 장면도 어둠 속 소리에 민감한 좀비 특성을 이용하거나 기차 상단 짐칸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으로 설득력을 확보한다.

인간을 좀비로 설정한 것은 기존 좀비영화들을 통해 상식화된 좀비의 특성을 끌어들여 기차라는 공간에서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한 선택처럼 보인다. 이런 요소들은 흥행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럽다. KTX 속도만큼이나 경쾌하고 빠른 이야기 전개와 충분히 납득 가능한 위기 요소 설정 등에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상업영화의 외형과 재미를 보장 하면서도 내재된 다양한 상징과 의미 전달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이다.

카오스 속에서 스스로 각성하고 변화하는 캐릭터는 석우가 유일하다. 자기 중심 삶에서 위기에 처한 딸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과 무관한 다른 계층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상대적 약자를 염려할줄 알고 진심으로 딸을 대할줄 아는 진정한 아빠가 된다. 하지만 이를 자각하는 순간 좀비가 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자 마지막 해피엔딩을 전복시키는 새드앤딩과 같다. 감독은 아직 사회의 때가 덜묻은 태아와 어린이를 마지막 생존자로 설정해 희망을 얘기하고 있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이미 어떤 희망도 없음을 석우의 죽음(좀비화)을 통해서 선언한다.

‘돼지의 왕’에서 ‘부산행’까지
감독의 이전작들은 항상 무거운 사회문제를 다루는 주제선택과 구성까지 ‘굳이 애니메이션일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아심을 가지곤 했었다.

이런 의아심은 크게 2가지 이유에서 생긴다. 첫번째는 감정 기복이 심한 캐릭터들의 심적 변화에 따른 다양한 표정을 표현할때마다 직면하는 애니메이션적 표현의 한계이다. 아무리 탁월한 기법을 동원하더라도 실제 연기를 펼치는 연기자의 복잡미묘한 감정과 표정을 따라갈순 없다. 두번째는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다소 손쉽게 표현 가능한 특수장면들의 부재다. 일단 사회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배경부터 캐릭터까지 실사로 대처한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어보인다. 특히 그의 초기 단편부터 <돼지의 왕>까지는 그나마도 천사가 등장한다든지 얼굴이 돼지로 변한다든지 하는 만화적 표현들이 간간히 등장하지만 그의 가장 최신작인 <창>과 <사이비>에선 영화내내 단 한 장면에서도 실사를 왜곡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부산행>은 오히려 실사보다는 애니메이션에 더 적합한 설정과 소재를 지녔다. 물론 서두에 언급한바대로 <서울행>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 중에 <부산행>의 실사화가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아니러니하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점에서 <서울행> 개봉이 기다려질 뿐 아니라 개봉 이후 <부산행>에 대한 재평가가 무척 궁금해진다.

부산역에 멈춘 설국열차
영화를 다 보고나니 기억속에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자연스럽게 소환되었다.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차 있지만 지나치게 노골적이어서 되려 거부감이 들었던 <설국열차>가 생존과 지속을 위해 단일화 되어가는 시스템의 정당성을 묻는 영화였다면 <부산행>은 외형적으로 좀비영화로 비춰지지만 괴물(좀비)이 되어가는 인간들에게 여전히 희망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둘은 결국 같은 메시지와 경고를 담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 에니메이션 작품들에 투영된 현실사회를 향한 비판의식은 KTX에 좀비와 함께 고스란히 동반 탑승했다. 다만 문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자칫하면 넘치는 재미와 속도감 때문에 숨은 메시지를 읽는 노력을 간과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비판 의식은 사라진 신파에 기대는 안일한 영화라는 평을 서슴치 않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이런 블럭버스터가 존재했었나요?”

멈춰섰던 설국열차는 다시금 부산을 향하는 KTX호가 되어 풀지못한 숙제에 대한 답을 찾으러 고군분투 했고 한강에 출몰하던 괴물은 좀비가 되어 다시금 스스로 괴물로 변해가는 우리 모습에 경각심을 준다.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서 <부산행>은 한국영화 연장선상에서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설국열차>를 훌쩍 뛰어넘는 기분좋은 한국형 블럭버스터다. 

▲ 김영헌 라비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