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에서 보이는 골목길이 옛 제주읍성 성곽이 서 있던 자리다.

제주시 상권의 중심지였던 중앙로가 쇠퇴한 지금, 이 공간을 '구도심' 혹은 '원도심'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극장과 병원, 지하상가가 몰려 있어 인구와 물류 이동이 가장 번잡한 곳이었다. 제주대병원의 이동으로 쇠락의 기운에 빠지는 듯 하지만 여전히 제주의 중심지는 이곳이다.

지금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곳 제주의 원도심은 탐라의 흔적은 물론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크고 작은 역사적 흔적을 남겨왔다.

현대적인 시설들과 건물들에 가려진 그 흔적들을 쫓아가 보는 투어가 지난 7일 진행됐다. 제9회 제주영화제 이색 투어 중 하나로 진행된 '제주 원도심 골목길 걷기' 프로그램이다.

▲ 구도심 투어 안내를 맡고 있는 김태일 교수(손으로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와 참가자들.

7일 오전 9시, 집결지인 오션 스위츠 호텔 정문에 40여명이나 집결했다. 애초 모집계획은 10명. 제주시 탑동과 건입동, 이도1동 등 구도심 지역 수㎞를 걸어야 하는 일정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라곤 행사 주최측인 제주영화제 관계자들도 예측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 날엔 아침부터 비까지 내린 하루였다.

영화감독들과 영화배우 진구도 예정대로 참석했다. 40여명 중 제주도민은 기자 포함 단 8명. 허나 사실 도민이라고 해봐야 관광객(외지인)들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 제주의 옛 모습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 40명 모두 같은 마음으로 투어를 즐겼다.

투어를 준비하고 리드한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제주영화제 집행위원)는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지만 특히 제주의 건축물들은 제주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타임캡슐과 같은 역사문화공간"이라고 설명했다.

▲ 제주지방기상청으로 향하는 외벽. 이 벽이 제주읍성 성곽이다.

이번 구도심 투어는 그래서 제주읍성 그 옛 성곽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는 코스로 마련됐다.

집결지였던 제주시 탑동에서 출발했다. 김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의 탑동은 일본 강점기 때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해 바다를 매립해 만들어졌다. 또한 그 때 일본군은 서부두 방파제를 축조하기 위해 제주읍성을 구성하고 있던 성곽 돌들을 해체해 사용했다. 제주의 아픈 역사가 묻힌 곳이 탑동인 셈이다.

탑동에서 산지천을 관통해 제주지방기상청이 있는 도로로 진입했다. 기상청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오른쪽 외벽은 거대한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돌담 벽이 바로 제주읍성을 이루고 있던 성벽이다. 아직 남아있는 제주읍성의 역사다.

이후 제주읍성의 수호신으로 세워졌던 동자복이 있는 건입동 1275-3로 이동했다. 동자복과 함께 용담 1동386-3번지에 서자복이 세워져 있다. 이 둘 석상은 서로 마주보고 서 있으며 원래는 모두 절에 세워져 있던 입상이다. 어릴 적 득남을 기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곤 했다는 말이 있다.

▲ 구도심 투어에 동행하고 있는 영화배우 진구. 동문시장에서 제주의 전통음식인 빙떡을 먹고 있다. 그는 무려 4시간 동안 걸어다닌 일정에 끝까지 함께했다.

이어진 투어는 동문시장을 통해 남수각길로 향했다. 이곳은 지난 2007년 태풍 '나리'로 인해 1m나 침수된 지역이다. 지난해에도 많은 양을 동반한 폭우로 주민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현재 이곳은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돼 환경정비가 한창이지만 김태일 교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남수각을 관통하는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건물이 철거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코스는 제주성지였지만 현재 한창 정비공사가 이뤄지는 중이라 김태일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외곽만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예전 제주의 명동길로 불렸던 한짓골에 이르자 주차장 언저리에 '북두칠성 제일도'라고 쓰여진 비석과 함께 12지신 중 하나인 쥐 모양을 한 석상이 세워져 있다.

▲ 칠성대 중 하나인 북두칠성 제일도 '천추성'.

과거 우리 민족은 북두칠성을 신격화 한 '칠성신앙'이라는 독특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지배한다는 도교의 믿음에서 유래했다. 북두칠성 국자의 머리부터 차례로 천추성, 천성성, 천기성, 천권성, 옥형성, 개양성, 요광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7개의 별을 인격화해 칠성신으로 삼았다.

이를 토대로 옛 제주에서도 제주읍성 내에 칠성신을 모시기 위해 북두칠성 모양으로 7개의 대(坮,성문)를 쌓았다. 이를 칠성대라 한다. 비석에 새겨진 '제일도'는 북두칠성의 첫번째 별 '천추성'을 가리킨다. 제주시는 구도심 지역 활성화와 역사문화 자원화에 힘써 나가겠다는 목표로 이러한 7개의 비석 표시를 지난 2011년에 세웠다.

한짓골을 지나 제주읍성 외곽 성벽이 있던 길을 따라 걷다보니 제주 최초의 극장이었던 옛 현대극장 건물(현 대교문화사)과 제주 최초의 교회인 성내교회를 볼 수 있었다. 옛 현대극장 건물은 제주4.3사건과 얽혀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성내교회는 제주읍성 성곽 바로 안에 지어졌다고 해서 말 그대로 '성내'교회로 이름지어진 곳이다. 성내교회 바로 앞 도로가 성곽이 있던 자리다. 전형적인 고딕양식으로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양을 하는 듯한 형태로 지어졌다.

▲ 빨간 선이 제주읍성 성곽이 있던 표시다. 노란색 점은 칠성대 위치. 사진 위쪽이 탑동방향 북쪽이다.

계속 이어진 발걸음은 제주읍성의 흔적지를 찾아보고 제주학교소학교를 마주해보며 4시간여 동안 진행된 투어를 끝냈다.

김태일 교수는 "한라산과 오름, 갖가지 제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자연환경만이 제주의 관광이 아니라 제주의 좁은 골목길을 안내하는 이러한 컨텐츠들 역시 제주관광의 한 축을 이루게 될 중요한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우리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앞으로는 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며 제주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관광이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길과 건축으로 구성된 우리들 삶의 공간이다. 이곳엔 세월의 흐름 속에 살아왔던 각양각색 사람들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고, 그 흔적들의 축척으로 표출되는 것들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활동으로 이어진다고 그는 말했다.

▲ 동문시장.

▲ 남수각로 위 건물들은 모두 제주읍성 성곽터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 제주 최초의 교회인 성내교회. 성내교회 앞 도로가 제주읍성 성곽이 있던 자리다.

▲ 옛 현대극장 건물.

▲ 현재까지도 초가형태를 유지한 채 거주하고 있는 제주 유일(?정확하진 않다)의 초가집.

▲ 매우 특이한 구조의 건물. 건물을 유심히 살펴보면 2층에 바로 현관문이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을 열면 바로 떨어지게 되는데 왜 저 문을 달았는지에 대해선 김태일 교수도 알 수 없다고. 이 건물은 동교에서 동문시장으로 내려가는 길 중간 우측 골목길로 들어서면 바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