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패턴에 맞고 행복한 곳이 자신의 집이다

문화	삶의 패턴에 맞고 행복한 곳이 자신의 집이다건축학개론 '서연의 집' 구승회 건축가와 함께 한 특별한 답사여행 김명현 기자 \| AshesKMH@leisuretimes.co.kr

승인 2013.09.24 00:36:41


▲ 카페 서연의 집 폴딩도어가 닫혀 있는 내부 모습.

행복한 집이란 어떤 공간일까. 행복은 주관적인 만족감이기에 어떤 집이어야 한다는 형태로 형상화 할 순 없을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의 집은 있다.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들은 목 좋은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이고, 지방에서 지내는 이들은 멋있는 단독주택을 갖고 싶어한다. 이건 인간의 당연한 욕구이자 욕심이다. 그림으로만 보아오던 예쁜 공간을 갖고 있는 집을 보면 누구나 그러한 곳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냥 단순히 먹고 자고 지낼 수 있을 수 것으로만 여기는 집에선 아름다움이 묻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조그만 단칸방이라도 애정을 담으면 행복한 곳일 수 있는 곳이 집이다.


▲ 구승회 건축가(그래프트 디자인 소장).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극중 서연(한가인)의 제주도 집을 설계했던 구승회 건축가(그래프트 디자인 소장)는 "도시에서 살 것이냐, 외곽지에서 살 것이냐를 정하는 문제부터 자신의 삶의 패턴과 맞는 집을 찾고, 거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곳이 자신의 집"이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지난 9일, 관광객들과 제주도민, 영화감독들은 구승회 건축가를 따라 이곳 서연의 집을 찾아 특별한 답사여행에 나섰다. 제9회 제주영화제 이색투어 프로그램 3번째 여정의 일환이다.

영화속에서 서연의 집은 여주인공 서연이 아버지와 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애초에 이 공간은 게스트하우스 형태로 지어졌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을 하고 난 뒤 방문객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불편해 질 것을 감안해 카페로 설계 변경을 하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구승회 소장이 설명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 참석자들은 구 소장으로부터 영화 속 서연의 집과 현실에서 지어지게 된 서연의 집의 차이점에 대해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 폴딩도어를 완전 개방했을 때의 모습.

서연의 집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1층의 폴딩도어와 2층 잔디밭 옥상. 특히 폴딩도어가 한 번에 쫘악 제껴지며 뻥 뚫린 시야 너머로 위미리 바닷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공간을 사람들은 너무 좋아했다.

지난해 1월 설계를 시작해 9월에 착공, 만 6개월 만에 완공해 올해 3월 27일에 오픈식을 가진 서연의 집. 이제 약 6개월여가 지났지만 인기는 여전하다. 영화가 개봉된지는 1년 반이 흘렀다. 국내 로맨스 영화 중 가장 뛰어난 흥행성적을 기록한 영화 덕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누구나 갖고 있는 '첫사랑'의 기억을 간직하게 만든 장소로 여겨지면서 청춘남녀들의 발걸음을 잡아당긴 힘이 강력했다.

투어가 진행된 이 날은 월요일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카페 오픈 시간 10시 이전부터 기다리는 관광객들부터 오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구 소장은 "정말 이렇게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면서 "그래도 5∼10년 정도가 지나면 영화를 못 본 젊은 세대가 주를 이루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처음 구상했던 계획대로 한 두 명의 방문객들이 옛 추억을 안고 한적하게 머물다 가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 서연의 집 2층 잔디밭 테라스.

현재 2층 옥상에 조성된 잔디밭은 푸르게 자랐다. 영화처럼 잔디밭 위에 누워 서로 마주보는 장면을 찍는 관광객들도 제법 많다. 영화속에서 잔디밭 옆에 있던 기와는 현실적인 문제로 철거됐다. 만들 수는 있었지만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너무 많았다고.

사실 1층의 폴딩도어는 정말 멋있지만, 위험성이 많다. 건물 바로 밖이 바닷가이기 때문에 태풍이 불어닥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풍이 거세면 돌까지 튀는 가까운 거리다. 실제로 지난해 태풍이 불었을 때 죽은 물고기 한 마리가 서연의 집 연못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해 구 소장은 "국내에서 폴딩도어에 취해지는 모든 수단과 방법은 다 동원했다"며 "실제 태풍이 불어닥쳐봐야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구 소장은 영화를 연출한 이용주 감독과는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동기생이다. 구 소장은 "건축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이용주 감독으로부터 이건 영화 세팅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요구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이 구 소장에게 전한 건 "이 집은 아버지와 딸이 사는 서연의 집"이라는 것 뿐.


▲ 구승회 건축가(그래프트 디자인 소장)가 서연의 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설계에 들어가면서 구 소장은 "처음에 이곳에 와보니 바다가 주는 거역할 수 없는 라인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도 제주에서 지어진 집이니 제주민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제주색을 넣는 것만이 제주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그 '거역할 수 없는 바다의 라인'을 집어넣기 위해 폴딩도어를 구상했고 그러다 보니 제주의 바다를 담는 것 또한 제주를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 소장은 "여기에 오면 항상 좋았다. 여기 그냥 앉아 있으면 좋은 느낌이 다가와 삶의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건축가지만 구 소장은 아파트에 산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건축가들의 80∼90%는 아파트에서 산다. 구 소장은 "단독주택이 좋은 것만이라고 볼 순 없다"고 설파했다. 이어 그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아파트가 보다 나은 삶의 모습에 최적화된 구조라고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자기의 삶의 모습이 어떠느냐에 맞는 집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 소장은 "도시 안에 모여 살게 되면 선택하게 되는 것이 아파트인데, 욕심대로라면 서울 한복판에 300평 짜리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것이 만족감이 클 수 있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그게 아니라면 도심 안에서 모여서 가는 것이 친환경적이며, 자신 삶의 패턴에 맞춰 행복을 찾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삶의 패턴에 맞는 곳에서 찾아낸 행복, 그곳이 바로 집이라는 곳이라고 그는 말한다.


▲ 만일 아바(ABBA)의 노래였다면 벽에 걸린 저 장면이 그토록 아련하게 다가왔을까.

이 아래 글은 건축적인 부분과 상관없는 여담이지만 재미있어 소개한다.

영화 속에서 첫사랑의 감수성을 폭발시켜 준 곡은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이다. 이 곡 때문에 영화는 더욱 더 탄력을 받아 첫사랑 아픔을 간직한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적셨다. 참고로 이 곡은 김동률이 고2 때 작사 작곡했다.

그런데 원래 이용주 감독이 원했던 곡은 전설적인 그룹 아바(ABBA)의 어떤 곡(이 부분을 묻지 못했다)이었다. 오래된 노래긴 하지만 아직 저작권이 풀리지 않았고 저작권료 또한 매우 비싸다는 이유로 영화에 쓰질 못했다. 그러다가 영화 분위기에 '기억의 습작'이 맞아 떨어진다는 판단이 섰고 결과적으론 대성공을 거뒀다. 물론 아바의 수많은 곡들 또한 명곡이지만 '기억의 습작' 대신 다른 곡을 썼었다면 이처럼 강력한 파장을 일궈냈을지 궁금해진다.

하나 더 재미있는 점은 구승회 건축가와 이용주 감독, 김동률은 모두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출신들이다. 앞서 말한대로 구 소장과 이 감독은 동기생이며, 김동률은 학과 후배다. 이 둘과 김동률은 서로 이름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사실 잘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구 소장의 말에 따르면 영화에 '기억이 습작'이 씌여진 건 순전히 우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