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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을 갔다 온 다음날인 일요일 오후부터 기온이 확 내려갔다. 오름을 걸으며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느낀다" 라고 하더니만, 성급하게도 그 다음날 억지로 손을 흔들며 이별을 고하고 있다.
가을은 예고없이, 쫓기듯이 성급하게 가지는 않았다. 지난 몇주동안 우악스런 등산화에 밟히는 낙엽을 통해 이별이 임박했음을 가을은 계속 속삭이고 있었다. 정작 입으로만 “가을 가을"하던 우리가 무심했던 거다. 붉은 피를 뒤집어쓴 듯한 붉은 단풍 아래서 찍어 대던 사진 또한 이별 신호가 아니었겠는가.
삼의오름은 제주시내 가까이에 있어서 홀대받는 곳이다. 1470 년부터 산신제를 지내던 산천단이 삼의오름보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제주시 기준), 옛날에는 이 곳도 아주 먼 곳이었다. 도로가 뚫리고 학교가 들어서면서 통행이 많아져 ‘가까운 곳'이 되버렸다. ‘동네심방 안 알아준다'의 대표적 피해 지역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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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의오름. 길잡이 모습이 찍혀 있다 |
삼의오름은 ‘아라동 역사문화탐방로'에 포함돼 있다. 오늘을 출발지인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고 삼의오름을 넘어 간다. 그리고 열안지오름을 오르고 마지막 코스인 노루생이오름을 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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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의오름 오르는 길 |
길이 잘 정비돼 있다. 비고가 139m이지만 경사가 만만하지 않아 중간에 한번 숨 돌리고 가는게 좋다. 오름은 경기가 아니다. 뒤를 돌아보면 오름앞에 있는 제주국제대학건물이 한눈에 들어오면서 ‘내가 여기까지 올라왔구나’ 하는 뿌듯함이 배어든다. 자신의 체력을 과시할 목적으로, 허약할 수 도 있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출신 김모씨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오름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그는 제주출신이지만 서울에 오래 살아서 오름의 진미를 전혀 모른다.
정상에 오르면 제주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또 다른 김모씨는 “이 오름이 제주시 전체를 조망하는데 가장 좋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몸을 돌려 시야를 반대쪽으로 향하면 또 다른 풍경이 눈앞을 가득 메운다. 이곳에서 보는 한라산은 남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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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다리폭포 |
내려간다. 칼다리폭포로 간다. 강수량이 많을 때만 폭포가 연출된다. 비 많이 올때 반드시 한번 올 것이다. 말라있는 건천은 휴식 장소를 제공해 준다. 여기 앉아 커피 한잔...꽤나 운치있다. 위미리 김모씨는 “어릴때는 이런 데서 개고기도 많이 먹었는데…”라며 아쉬워 한다.
오늘 여정은 쭉 이어지지 않는다. 차를 타고 이동한다. 이번에는 열안지오름이다. 오름 이름은 산 모양이 기러기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데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제주도청 자료를 비롯한 블로그, 카페 등등에도 모두 이렇게 적고 있다. 한자로도 列雁地岳(열안지악), 列雁岳(열안악), 列雁山(열안산)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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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안지오름 정상에서 본 풍경 |
과연 그럴까? 우리의 길잡이 말을 들어보자. “눈을 들어 앞을 봐라. 사라봉에서부터 이어지는 오름들이 보이는가? 사라봉이 날고 있는 대장 기러기이고 나머지 오름들은 일렬로 줄을 맞춰 날아가는 기러기인 것이다" 열변은 이어졌다. “이런 오해는 오름을 직접 답사해보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서 이름만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모두 고개를 숙였다. 매우 짧지만 존경의 마음을 담았다. 이를 감지한 길잡이의 말이 덧붙여졌다. “어떻게 오름 하나가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될 수 있겠는가. 당신들은 이 오름 전경을 보면서 줄을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로 보이느냐? 아니면 밥사발 엎어 놓은 것으로 보이느냐?” 우리 모두는 후자였다. 우리는 감동을 부여 안은 채 다음 일정인 노루생이오름으로 향했다.
이번 토요일에는 개오름(믜오름), 큰골른오름(여진머리)에 이어서 족은골른오름을 오른다고 한다. 중간에 차량으로 이동하지 않는 ‘다이렉트' 트레킹이다. 따라가야겠다. 점령군처럼 다가오는 겨울과 후퇴에 미련이 남은 가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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