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시간을 내고 해외관광에 나서는 기쁨은 낯선 곳을 체험하는 데서 오는 설레임이다. 물론 굳이 해외에 나서지 않더라도 국내서 가보지 못했던 곳이나 다시 찾아가는 여행길 또한 즐거움은 매한가지다.

여행의 즐거움은 보고 듣고 먹고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두 손이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 중국 유일의 국영면세점인 CDF 매장 앞에 관광객들이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다.

여행길이 아닌 사람들도 이는 마찬가지다. 출국장을 나서는 순간 공항이나 항만 내에 전시된 면세점을 이용하는 것과 목적지에 도착해 지역토산품을 구매하는 즐거움은 여행객들이나 비즈니스차 업무로 나갔다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도 똑같다. 그래서 쇼핑은 관광에서 가장 핵심적인 한 부분을 차지한다.

관광을 즐기다보면 지역의 값싼 물품을 구매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백화점에 전시된 명품들을 보다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면세쇼핑을 선호한다. 면세쇼핑은 출국시에만 가능하고 구매한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더욱 기회비용의 가치가 올라간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들이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이들이 구매하는 면세물품 매출은 상상을 초월한다. 면세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중국도 면세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중국 해남 하이난성 산야(Sanya)시에 위치한 CDF(China Duty Free)가 중국 내 유일한 (시내)국영면세점이다.

▲ CDF 매장. 중국은 7만평 규모의 CDF 2호점을 하이난 남부 지역에 건설 중이어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시내면세점의 이용객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 차지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곳 면세점의 이용객 80∼90%가 내국인, 즉 중국인들이다. CDF는 2009년에 지어졌으며 2011년 4월 20일부터 중국인들도 '출도면세' 명목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중국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한 모습으로 변했다. 이같은 정책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명품 소비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명품소비 60%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마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로 향하는 발걸음을 자국 내 면세점으로 돌린다는 계획인 셈이다.

이어 2012년 11월 1일부터 중국 면세정책이 바뀌면서 1인 한도금액이 5000위안(약 88만원)에서 8000위안(약 140만원)으로 조정됐다. 이와 함께 하이난 주민들은 1년 1회 이용할 수 있고, 중국 본토인들은 2회 이용할 수 있도록 변경됐다. 중국인들이 오픈시간인 오전 10시 이전부터 몰리다보니 CDF는 줄을 서서 기다릴 수 있도록 안전시설을 설치하기까지 했다.

시장이 커지다보니 중국정부는 하이난 남부 지역에 23만1405㎡(7만평) 규모로 CDF 2호점을 짓고 있다. 2014년 중에 문을 열 계획인데 오픈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CDF 1호점은 1만평 규모(영업면적 창고포함 6000평)다.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2011년 매출이 10억위안(약 1760억원), 지난해엔 20억위안으로 2배나 상승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만 15억위안의 매출을 달성한 상태다. 2012년에 300만명이 다녀갔으며, 올해 상반기엔 200만명 정도가 CDF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부분 중국인들이 소비한 액수다.

이는 물론 국내보다 훨씬 크다. 현재 제주도엔 연동과 중문에 1곳씩 2개소가 있는데 CDF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규모로 협소하다. 그래도 CDF에 비교해 장점이라면 매출의 98.5%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외화벌이에 한몫하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중국인들의 쇼핑욕구를 수용하기 위한 환경이 제주도에 필요한 것"이라며 "집적화된 대형 쇼핑센터와 면세쇼핑의 규모가 커져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세계 면세시장은 매년 평균 17%씩 성장해 가고 있지만 제주도는 2000년 신규특허 발급 이후 현재까지 시내면세점 특허가 발급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 중국 하이난 지역은 현재 섬 전체가 공사장이나 다름없다.

파이가 커진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순 없다. 왜냐하면 면세 활성화 정책으로 인해 대기업이 비약적으로 커버리면 지역상권은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CDF 면세점에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인근 백화점은 유령시설 같이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인근에 있던 백화점에 들어갔더니 손님들보다 직원 수가 더 많이 보였을 정도였다. 여유법에 의해 관광객 전용 쇼핑몰은 더 심각했다.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는지 테이블에 먼지가 내려앉아 있을 정도여서 문제의 심각성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 때문에 CDF는 2층 매장 한 쪽을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들로 채웠다. 면세점 안이지만 비면세로 판매되며 하이난의 다른 지역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동일하다. CDF에 입점되면 보다 쉽게 관광객에 노출되기 때문에 지역상생을 위한 방안 중 하나인 셈이다. 또한 CDF는 지역발전 상생을 위해 주로 학교와 건설업에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 CDF에서 학교를 세우기도 했으며, 본사에서 적립하고 있는 희망기금을 통해 매년 지원액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 하이난 지역 곳곳에 지어지고 있는 대형 건축물들.

현재 산야시가 포함된 하이난은 정부의 주도적인 계획아래 엄청난 건설경기의 붐이 일고 있다. 중국은 아직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모든 토지가 정부소유다. 이 토지에 엄청난 자본이 쏟아부어지며 객실 1000∼3000개가 넘는 호텔과 리조트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서고 있다. 온 동네가 공사장일 뿐만 아니라 한밤중에도 굴착기를 가동할 정도로 공사속도에 불을 붙이고 있다. 급속한 성장이 가져올 여파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예전 한국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이와 함께 관광객들로 넘쳐나다보니 같은 지역 내에서도 물가폭의 편차가 너무 심하며, 바가지 요금 또한 극성이다. 하이난 현지에서 가이드는 "얼마전에 한국 관광객 일행이 식사를 했는데 한화로 600만원이라는 가격이 나와 양국 영사관이 나서 문제를 해결(300만원으로 합의)했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천 유웅 상하이불야성국제여행사유한공사의 총경리는 "중국관광객들이 자국내 바가지 요금 때문에 국내여행을 꺼리기도 한다"며 "반면 제주도의 경우엔 아직까진 그러한 부정적인 경향이 없고 인식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상권을 장악해버린 CDF(국내와 비교하면 대기업이 될테다)와 조금이라도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어보려는 불건전한 지역상권이 불러 일으킨 문제다. 결국 중국 여유법으로 인한 관광시장 변화의 물결에서 희망적이며 긍정적인 대안은 대기업을 위주로 한 면세시장의 활성화가 제주지역 상권을 동반 성장시켜야 한다는 의무감과도 같은 명백한 전제조건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 객실 1000여개를 기본으로 갖추고 문을 연다는 하이난 지역의 호텔 및 리조트들.

제주형 시내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 유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로 인한 낙수효과를 지역 상권에게 뿌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다. 보다 집적화된 쇼핑센터와 규모화된 면세점이 지역상권으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으려면 '관광 공동체'로서의 인식을 지역민들과 우선 동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숙제다.

면세쇼핑(쇼핑관광)은 분명 관광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면세쇼핑이 관광객 유입원천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선 순위여선 곤란하다. 관광객들의 1차 목적은 지역관광이다.